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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 Aug 20. 2020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중국, 크로아티아

  처음 발을 디딘 외국 땅은 중국이었다. 티베트에 가기 위해 들른 쓰촨성 청두(成都). 지금은 기차를 이용해서도 갈 수 있지만 당시엔 티베트에 가려면 청두에서 여행허가증을 받고 비행기로만 갈 수 있었다. 번거롭기도 했지만 비용 또한 적잖이 들었던 것이다.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던 그 시절,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중국어는 ‘워부스쭝궈런’我不是中国人(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이었다. 일본에 처음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와따시노 니혼고가 헤따데스’わたしの日本語が下手です(저 일본어 잘 못해요)와 같은 말을 되새겼다. 지금 돌아보면 도대체 왜 그런 말들을 열심히 익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문장들을 부지런히 연습한 덕분인지 나의 발음이 제법 정확하고 유창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해외에서의 첫 숙소, 청두 교통반점(몇 년 전 다시 가보니 많이 쇠락해 있었다)


  지금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던 당시 중국은, 모두들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청두 공항 직원들도 모두 제복을 착용하고 마치 군인들처럼 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공항 직원인지 군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곧바로 택시기사들이 다가와 말을 붙인다. 그땐 중국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당연히 '어디까지 가니'라고 물어봤을 터.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나의 첫 숙소 이름 '자오통판디엔'(交通飯店)을 성조에 유의해 가며 반복해 발음해댔다. 한 기사가 20위안에 가자고 손짓을 한다. 오케이, 하고 택시를 타고 한 20분쯤 갔을까, 느낌상으로는 숙소에 거의 도착해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확인차 기사에게 물었다.


"20위안 맞죠?" 


택시 기사는 갑자기 계산기를 꺼내더니 40이라는 숫자를 찍는다. 이런 속임수는 어느 여행지에서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해외 여행이 처음인 그때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오기가 일었다. 40위안에는 못 간다, 다시 돌아가자, 하니 택시 기사는 갑자기 왕복 6차선은 됨직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쿨하게 유턴을 하여 공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재밌었던 것은, 택시 기사가 혹 공항에 도착하여 돈을 달라고 하지 않을까 했던 내 염려와는 달리, 돈을 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갔으면 20위안을 벌었을 터인데 먼 길을 운전하고 한 푼도 안 받는, 그런 사고방식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고방식인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에서 해안 도시 스플릿(Split)으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찮게 중국인을 만났다. 천쉰(陳巽). 크로아티아에서 동양인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던 그 시절, 버스 타기 전부터 유난히 눈에 띄던(나 말고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니) 그녀가 우연찮게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쩐지 한눈에도 중국인 같았다. 


  “스쭝궈런마? 워부스쭝궈런.” (중국인이세요? 저 중국인 아니에요.)


  참 웃기는 말이지만 내가 천쉰에게 처음 건넨 말이 그런 것이었다. 이건 뭐 처음 보는 외국인이 나에게 “한국인이세요? 저 한국인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꼴이니. 그랬더니 천쉰은 쉴 새 없이 내게 중국어로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그녀에게 들어보니, 내 중국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 내가 중국인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저 중국인 아니에요'를 너무 유창한 중국어로 말해 버려 '이 사람, 중국 사람이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스플릿에서 만난, 천쉰의 친구들 다니엘라와 이고르. 

  가능이나 할까, 싶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어떤 외국인이 내게 "저 한국인 아니에요."라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말한다면 '아, 이 사람,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어를 못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니 내 말을 알아듣겠구나' 생각할 것 같다는 말이다. 


  천쉰은 스플릿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상하이가 집인 그녀는 일찌감치 스플릿으로 건너와 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서신을 두어 차례 교환한 적 있는데 이미 오래 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천쉰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Believe me,"로 시작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을 때는 믿음직스럽다가도 그 말만 들으면 문득 의심이 들곤 했다. 물론 스플릿을 여행하는 동안 천쉰은 내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역시나, 사랑스럽지 못한 말투로 “당신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말없이 바라보는 편이 오히려 좋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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