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걸린 사진들
여행도 모르고 카메라도 잘 모르던 시절, 그 시절 여행에서 찍은 사진 중 스스로 흡족해하고 있는 사진이 몇 있다.
내가 처음 여행한 해외 여행지는 중국과 티베트, 네팔이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가는 길. 사람들을 모아 차를 빌려 티베트 고원을 며칠간 달렸는데 어느 날 우연히 난 조수석에 앉게 되었고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으며 그때 멋진 설산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있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나 디카로 수십 장 연사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지만, 당시는 필름을 낭비할 수 없어 셔터 한두 번으로 이 풍경을 담아야 했다. 사진의 결과물도 바로 확인할 수 없어 여행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와 인화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고 충무로 포토피아에서 크게 인화해 액자에 넣어 두었다. 지금도 내 사무실 책상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이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찍는 실력도 일천했고, 중급기 정도의 필름 카메라에 렌즈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소서스블레이(Sossusveli)라는 곳이 있다. 오래전에 말라죽은 나무들이 화석처럼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건졌다. 그중 특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이곳은 워낙 인기 있는 곳이라 언제나 여행객들로 붐비는데, 인파를 피해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마침 아침 일찍 도착할 수 있었고 때마침 내 카메라 프레임 안에 그녀가 들어왔다. 죽은 나무들만 있었다면 담지 못했을 쓸쓸함, 아련함 이런 것들을 (아마도 일본인인 듯한) 그녀 덕분에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얻어걸린 사진들이 몇 장 더 있다. 중국 윈난 리장에서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전통 복장의 노인,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중 프레임 안을 지나가던 여인, 스페인 오비에도의 한 광장에서 사진에 들어온 한 남자.
생각해 보면 사진, 특히 여행사진은 우연히 얻는 장면이 많은 것 같다. 아니 우연히 얻지 않은 사진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우연이라는 것도 결국 그때 내가 나의 의지로 그곳에 사진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카메라가 고장 나지 않고 필름이나 배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곳에 그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다 충족되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점에서 여행사진의 미학은 우연의 미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