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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 Jul 30. 2020

다정해지는 순간 2

노르웨이 - 스타방에르

  아빠가 다정해지는 건 아이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풍경을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서 스타방에르Stavanger 가는 버스 안에서도 보았다. 노르웨이 서안西岸은 피오르가 깊어 해안 따라 오가는 버스들은 종종 버스째 배에 실려 피오르를 건넌다. 버스에 탄 채 다시 배에 실리는 기분은, 둥실거렸다. 사람들은 대개 버스가 배에 오른 뒤 버스에서 내려 뱃전에서 햇빛을 쏘이거나 튀어오르는 물방울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땅이 아니라 배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꽤 오랜 시간의 버스 여행이었지만 그렇게 몇 번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배를 타고 내리는 바람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렇게 피오르를 건너 지나가는 길에 멈춘 작은 마을 버스 정류장. 엄마와 아이가 아빠를 마중 나와 있다. 버스에서 내린 아빠는 며칠간 베르겐이나 어떤 큰 도시로 출장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아빠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드는 아이, 그러자 아빠는 먼저 아이에게 선물 상자 하나를 건넨다.


베르겐, 노르웨이


  응당 그것은 자동차나 로봇 같은 장난감이리라. 그런데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은 아이가 집어든 것은 뜻밖의 것이었다. 작은 보온병. 아차, 아이가 실망하겠구나, 아이는 로봇이나 자동차 장난감을 기다리며 아빠를 오래오래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다음 광경을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 않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더욱 뜻밖이었다. 화안하게 웃으며 아빠가 건넨 보온병 선물을 꺼내어, 틀림없이 텅 비어 있을 보온병을 들고 한껏 맛있게 그 안에 든 음료를 마시는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였다. 아빠는 더욱 다정해져 아이를 품에 안고, 정류장이 작은 시골을 버스는 떠나왔다.


베르겐,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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