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자주 두통을 앓았다. 머리맡에는 딱지 모양으로 접은 종이 뭉텅이가 있었다. 두통약이 든 종이였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끙끙 앓으며 머리맡을 더듬어 종이 딱지를 찾았다. 틀니를 빼고 종이를 펴서 고운 가루약을 입에 털어 넣고, 할머니는 가루약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입을 헹궜다. 틀니를 다시 끼워 넣은 할머니는 안도감과 피로함의 신음을 내쉬었다. 그리고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이 이불 안에 작은 몸을 눕혔다. 나는 할머니의 등이 불규칙하게 들썩이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가 끙끙 앓다가 갑자기 죽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새벽엔 언제나 내가 함께 했다. 어째서인지 연탄을 새로 가는 일마다 내가 불려 나갔기 때문이다. 버선을 신으면 발이 뚱뚱해져 할머니의 털신이 꼭 맞았다. 연탄이 묻으면 혼날 수 있어 할아버지의 누빔 옷을 빌려 입었다. 손에 헐거운 목장갑까지 끼고 나서 나는 할머니를 따라 연탄창고로 나섰다. 연탄을 가는 동안 나는 할머니 뒤에 꼭 붙어 할머니가 넘어지진 않는지 지켜보았고, 종종 연탄을 넣는 철가방 드는 일을 도왔다. 다 타고 흰색이 된 연탄을 담은 철가방은 뜨겁고 무거웠다. 목장갑 안까지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철가방과 몸을 멀리 떨어뜨린 채 뒤뚱뒤뚱 걸어야 했다. 할머니가 심한 두통에 시달린 어느 새벽에 연탄 가는 일도 내가 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다. 난로에는 세 개의 연탄이 들어간다. 위에 있는 연탄 두 개를 꺼내면 맨 아래에 다 타고 남은 하얀 연탄이 있다. 그것은 얼음 바닥에 깨뜨릴 것이기에 철가방 안에 조심히 넣는다. 그리고 불씨가 살아있는 중간 연탄을 맨 아래에 다시 넣고 그 위에 새로운 연탄을 차곡차곡 쌓는다. 연탄 가는 순서는 오래 봐와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귀힘을 조절한 재간이 없는 나는 새로운 연탄이고 다 탄 연탄이고 전부 깨뜨리고 말았다. 부지깽이를 들고 머쓱하게 서 있는 나를 할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그저 아이고 아까운 거, 하면서 까만 연탄 조각을 난로 안에 던져 넣을 뿐이었다.
아빠가 할머니 집에 오는 날은 연탄을 갈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아빠가 먼저 나서 연탄을 갈아놓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빠가 몹시 피곤해 새벽에 못 깨어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불려 나갔다.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너는 장손이나 다름없으니까 잘해야 혀, 엄마 아빠 힘들게 일하니까 네가 잘해야 혀. 나는 장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스물여섯부터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로 한참 바쁠 시기였다. 그게 원인인 건지, 집안 내력인지, 아니면 그즈음 먹기 시작한 우울증 약 부작용인지 모르겠다. 나는 머리가 아플 때마다 약을 먹는 대신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어둠 속에서 크고 작은 신음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의 유언 같은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장손이니 잘해야 혀, 장손이니까, 잘 혀. 보통 혼자 잠에 들었으므로 끙끙 앓다 갑자기 죽는다 해도 나를 발견할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생각 후엔 찔끔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