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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비율 이대일 Nov 03. 2019

만년필

기억의 포로

낮잠 한 숨을 보낸 후 책상에 앉으니 만년필이 보이질 않는다. 후배가 준 몽블랑인데 일 년여를 지나 이제 막 길이 든 녀석이다. 그런데 이게 어딜 갔는지 책상 주변을 비롯해 온방 구석을 뒤져봐도 대체 나서질 않는다. 이에 거실에다가 안방까지 샅샅이 살펴보건만 도대체 오리무중이다. 찾아본 곳을 또다시 살피며 그럼직한 곳을 모두 뒤져본 다음에야 낮잠 전에 애완견을 끌고 산보를 나섰던 걸 기억해내고 티셔츠에 만년필을 꽂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바꿔본다.


 밖으로 나선다. 그러나 만년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있어도 누가 주워갔으리란 생각에 실망감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든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걸 두 자루나 갖고 있다며 하나 가지라고 건네주던 후배 얼굴에다가, ‘이제야 길이 든 건데’하는 아쉬움으로 새 만년필을 꺼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촉이 너무 가늘어서 성에 차질 않는다. 게다가 새 촉이어서 까칠한 게 한층 신경을 거슬러온다. 잃어버린 몽블랑 생각이 간절해진다. 분실 감을 쉬 지워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미움이 솟아나기도 한다.


  마뜩잖은 글쓰기 후 잠시 쉬어가고자 안방으로 들어선다. 잠깐 누웠다가 문득 장롱 아래쪽이 궁금해진다. 여기에 숨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곳을 뒤지는 새, 거실에서 나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냉큼 나서니 현관 어귀의 콘솔 아래 벽면에 기대 놓은 작은 캔버스 안쪽에 글쎄 이 시커먼 놈이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곳이다. 오전 나절에 썼던 것이니 무슨 요술에 당치도 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갔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찾고 보니 반가움 그득해진다. 이어 내가 누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마움이 한가득해진다. 만년필 한 자루를 되찾은 기쁨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서가에 앉아 있는 책들을 비롯해 박제 나비나 화석에 이르기까지, 내 방에 있는 것들 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벽에 걸어놓은 그림 한 점도 평소엔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내다가 치워낸 다음에야 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보통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거의 모르고 지내는 듯하다. 건강이건 세월이건 우리는 그것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아쉬워하며 그 가치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보통, 우리는 제가 지니고 있는 것들에 만족해하기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갖기를 희망하며 그 충족을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소유의 욕망이나 기쁨은 바로 충족되는 순간의 일일뿐, 이내 안개처럼 사라진다. 서너 번 눈길 주고 나면 관심 지워지는 벽면의 그림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꽃이든, 그 무엇이든 항상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 오쇼 라즈니쉬의 말은 무엇보다 소중해 보인다. 그 무엇이든 익숙함이 우리를 무신경과 무감각의 세계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 어디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있음에도 우리가 물질적 변화의 세상에만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여기에 붙어 있어야만 돌아가게 된 이상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붙들려 있다는 점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만년필을 잃어버렸으면 한 두 번 찾아본 후 냉큼 잊어버리는 게 상책임에도 마음에서 이를 지워내지 못해 여기저기를 찾아들고 또 이처럼 찾아내지 못했다면 한 동안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터임에서다. 이래서 현재를 살라고 하는 현자들의 얘기는 꿈같은 현실일 뿐 우리의 마음은 그 무엇엔가 붙어서만 존재한다. 그 어디엔가 달라붙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따개비처럼 우리의 마음은 제게 익숙해진 것에 붙어 있다가 이게 사라지면 방황을 시작한다. 내 집, 내 가정, 내 자식, 내 자동차, 내 경험, 내 기억 등 우리는 내 것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를 생각해보면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이나 사물이 나의 주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내 뜻대로 사는 게 아니라 만년필의 포로가 되고 기억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게 익숙해지며 달라붙게 되는데서 비롯된다. 그야말로 집착이다.


 만년필 한 자루가 사람을 동요시킴이 이러함에서야 집에 불이라도 난다면 대체 어찌 될 일인가. 안식년 때 캐나다에서 사 모은 책을 비롯해 사방에서 모아 온 음반에다가 함지박 하나 가득한 여러 박물에 민속품 등 우리 집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내겐 심각한 일이 될 터이니, 이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닌가. 노력만으로  우리는 이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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