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영어_언어가 가진 문화 배경적 차이에서 오는 간극 메꾸기.
언어란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본능적인 수단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당연히 한국어가 모국어이지만 꽤 오랜 기간 외국인 들 틈에서 일하고 생활한 경험과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든 국제결혼으로 인한 미국 살이로 인해 영어는 피할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모국어가 되었다.
주어와 동사부터가 완전 반대인 한국어와 영어는 그 반대의 어순만큼이나 결이 아주 다른 언어이다.
같은 상황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영어를 쓰는 원어민은 한국어와 아주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 언어가 가진 문화, 배경적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국제 연애 혹은 결혼한 이들 사이의 소통은 둘이 같은 모국어를 써온 관계에 비해 언어를 통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우며 더욱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
얼마 전에는 남편과 대화 중에, 한국어로 치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의 의미인 , 무엇이든 계속하면 결국에는 잘하게 되어있다는 말을 남편은 'When you are at the hair salon for so long, you will get a haircut.'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해 찾아보니, 위와 같은 한국 속담의 의미를 영어로는 남편이 말한 표현 외에도 'Thred on a worm and it will turn.' 또는 'The sparrow near a school sings the primer.'라고 쓰이기도 했다. 또한 그외에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라는 한국어 속담은 영어로는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고 쓰인다.
아무래도 이런 속담들은 그 나라의 문화, 배경을 가장 일반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것을 예로 들어 , 듣는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예가 한국은 강아지와 떡을, 미국은 지렁이와 참새 그리고 풀을 예로 들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나의 속담에도 서로 다른 문화 배경적 가치를 드러내는 부분이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다른 언어를 공통 언어로 쓰고 사는 사람들이 겪는 오해와 차이는 말해 무엇할까.
한국어 자체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 우리 사회 배경과 관련이 뿌리 깊다.
개인의 개성이 중요해지고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잘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와는 다르겠지만 한국어 자체는 늘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욕구보단 타인의 시선을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강하게 반영된 언어임을 영어를 쓰면서 두 언어 간의 뿌리부터 다른 차이를 더욱 크게 느낀다.
영어는 굉장히 직설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I want this.'라고 하듯, 언어의 주어 동사 어느 곳에도 그것을 에둘러 말할 틈은 없다. 반면 한국어는 친구와 같이 식사 장소를 정할 땐 늘 타인의 욕구를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뭘 원해? 하면 '나는 이것을 원한다.'라고 말하기 전에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냐로 시작해 결국 타협점을 찾는 메뉴를 정하길 마련이다.
분명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미국에 온 후 나는 나의 감정과 욕구를 한국어처럼 늘 영어로도 에둘러 말하는 습관이 강하게 몸에 박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오해를 만들고 그러한 영어의 직설적인 화법을 내뱉는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 놀라기도 했다.
내가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분명 달랐겠지만 성인이 다 되어 적응해 나가는 해외 살이란 , 나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이 주는 괴리감으로 인해, 여전히 어렵고 아직도 걸음마 중이다.
오늘도 나는 내가 가진 정체성을 깨부수며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이곳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이 장기적인 나의 카르마를 극복을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선택한 이 삶에 후회보다는 그 시간에 나를 더욱 독려하고 강한 동기부여를 찾아가며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평생 함께 해야 할 이 영어와 더 친해지는 방법을 모색하며 간극을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단번에 큰 들숨 날숨으로 끝내버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주변도 둘러보며 결승전으로 달려야 성공하는 장거리 달리기처럼 , 언어란 그렇게 배우며 달려야만 이룰 수 있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조급함 보다는 매일 쌓이는 가치를 잃지 않고 내 삶을 음미하면서 오늘도 달려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