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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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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Oct 10. 2022

추도의 말 2

언젠가 피가 섞인 농담으로 그대의

그 찌푸린 얼굴에 축축함을 더했듯

그렇게 무덤 하나에 하나를 더 더해주시는 겁니다

누워있는 날 보며 웃어주시는 겁니다 그대

그 웃음으로 기억될 오늘, 비루한 제 이야기

자기 살을 물어 자기 배를 채웠던 에릭시톤의 희생사

그 분에 넘친 지식의 역사, 배고픔이라는 도끼질에

그렇게나 당연한 것에 이렇게나 따듯한 놀라움을

보여주었던 인간들의 허기진 논리,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사

온통 남김없이 쏟아내버린 법의학적 소견서

여기 신원미상의 시체가 이빨만은 남기어 놓았듯

이빨만은 동안의 썩어짐을 안은 채 무너지진 않았듯

살아왔던 흔적은 곧 부질없음을 증거하고 있으니


이 사람은 아름답게 죽었으며

이 사람은 사랑하며 살았다는 것을

그래서 그에 대해 기록된 것들이

이 모두 참으로 사실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가며

세어주시는 겁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가며


그는 매일 매일 일상의 먼지를 쌓아 올렸으며

여기 무덤은 그의 제단이자 제단은 그에게 시이며

시는 증거이고 놓인 증거이자 놓일 증거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에게 시는 신이었다는 것을 다만

그를 대신해 그의 것을 세어주는 신이 아니라

그가 다만 셀 수밖에 없었던 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가며

그대는 죄와 함께 이 심판자마저 사랑해주시는 겁니다


이빨이 이빨의 얼굴을 깨물어 놓지 않듯이

그대는 저를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한때는 셀 수 없었으나

이제 흩날리는 꽃잎처럼 기술에 의하여서든

사람에 의하여서든 아니면 그 중간에 의하여서든

오직 그러한 셀 수 있는 물건으로서만

여기 망각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하는

여기 일찍이 멈춰 서게 된 자를 그러나

항상 배는 곯지 않고 살아왔던 분류 상 중산층의

꿈을 꾸었던, 나다움의 소망을 품고 살아왔던,

그러나 모든 게 산산이 조각난 파편들로서 선 자를

그렇게 온통 온 마음으로 세어주시는 겁니다

여기 이곳에서 그대는 나와 함께 그를 그렇게

남김없이 기억해 보내는 겁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 더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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