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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Dec 26. 2022

Ditto 감상문


핫한 것은 보고 꼭 감상문을 남기는 편이다. 디토는 복고풍이지만, 근미래(지금)에 한국 학교 풍경을 예시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학교는 소멸할 것인데 그 이유로 참으로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오래된 것에서(오래된 것을 통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뮤비가 보여준다.


나는 XX중학교를 나왔는데, 이 학교는 원래 여중이었다. 내가 입학하기 한 해전에 공학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압도적으로 여학생이 더 많았다. 총 10반 중에 8반은 여학생 반이었고 나머지 두 반이 합반, 남자가 이 두 반 다해서 30명 정도였다. 한 반에 40명 정도였던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학생 숫자다.


나는 또 XXX고를 나왔는데 여기는 남고였다. 냄새가 많이 심했다. 또 추웠고, 많이 더웠다. 미묘하게 평화로운 곳이었다. 한 반에 35명 정도였다. 나는 이과였다. 문과가 여섯 반 이과가 두 반 나머지 한 반이 취업(?)반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한 반에 몇 명이었던가 하는 어떤 감각이다.


디토랑 뭔 상관이겠냐 하는 것은 요즘 한 반에 학생 수를 내가 말하면 대충 상관이 있어질 것 같다. 요즘 한 반에 학생수는 스무 명 정도 된다고 한다. 한 반에 스무 명이 들어 차있는 교실을 이 내 두 눈으로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상상은 할 수 있다. 있던 학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교실 크기가 줄어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러하다. 디토 뮤비는 그 상상을 구체화한다.


40명 정도가 한 반에 모이면, 5명 정도 씩 모인다. 6명이 될 수도 있다. 그룹이 생겨난다. 비슷한 애들끼리 모였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로 하나도 안 비슷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소득 수준, 학력, 문화자본, 그 어떤 것도 동질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은 군대로까지 확장된다. 다 달랐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고들 한다.


스무 명이 한 반에 있으면, 몇 명으로 그룹화될까. 똑같이 5명일까? 6명일 수도 있겠다. 이것이 어떤 사회적 동물의 그룹 최적 지점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스무 명이 있는 반에 대해 잘 모른다.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흔 명이 있는 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야겠다. 대학교를 가서도 과 동기가 마흔 명이었다. 미묘하게 평화로운 이 마흔 명의 감각은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항시 폭력적인 상태로 넘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상태, 그러나 갈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보는 눈들의 촘촘한 교차상태, 한 학년이 350명, 한 개인이 집단 속으로  숨어들 수 있는 정도의 뭉텅이 상태, 아래위로 합해 천명 정도 되는 집단 동질화의 압력과 반발력으로 균형을 이룬 상태 등이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마흔 명의 반은 그 당시 최신 캠코더로는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집단 형상이다.


뮤비에서처럼 이제는 구식이 된  캠코더에, 어떤 얼굴이 선명히 잡히려면, 우리가 얼굴을 분간할 수 있으려면, 그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으려면,  분위기는 재현될 수 있을 만큼 저화질이어야 한다. 저화질인 어떤 것은 위의 여러 상태들이 소거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따라서 예전 마흔 명의 반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된 여전히 구식인 캠코더는, 내게 다음을 보여준다.


학교는 이제 어떤 한 학생이 유령이 되기까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학교는 어떠한 압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학생을 동질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꼭 닮은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춤을 춘다는 것은 꽤나 오싹한 광경이다.) 이미 학교는 동질적인 아이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유령인 학생과, 유령이 아닌 다른 학생들의 존재는 근미래(지금)에 나타날 학교 안의 인적구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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