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미디를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본다.
웃어야 하는 상황에서 웃을 수밖에 없는 사태로의 빨려들어감.
그것은 덫에 걸린 동물의 형상이다.
이십 년 전 개그프로그램 마빡이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 가학성, 바보 같음, 반복성, 원초적인 웃음……
어떤 연예인 가족이 겪고 있는 일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마치 주말오후일곱시를 책임지겠다는
국민엠씨의 포부처럼
계속 선전되고 있다.
지금 모든 나라를 통틀어, 그리고 모든 시간대를 통틀어
웃음이 가장 값싸게 팔리고 있는 나라는 한국일 것이다.
(혹은 북한일 수도 있겠다.)
남근을 휘두르고 호스트들과 주술을 외는 온갖 사람들
다나카의 꼬추쇼 경영의 방망이쇼
바보 만들기, 혹은 자발적 바보 되기
웃길 수만 있다면 웃긴 존재가 돼도 된다.
존재는 언제나 웃음거리가 된다.
웃을수록 그 웃음의 이면에 망령이 깃든다는 것을
나는 박근혜 퇴진시위에서의 박근혜 성대모사쇼를 보고,
온갖 정치적 사안에서 폭발적인 웃음으로 점화되는,
민주적시민들의 합리적인 의심이 나락으로 빠지는
김어준의 쇼를 보고
여러모로 웃기는 상황들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내가
그 이전의 분노를 잃어버리게 되고만 일련의 사태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웃을수록 지옥에 더욱 오래 머무르게 된 형벌을 받고 있다.
지옥에서 지옥을 견디는 방법은 웃는 것이다.
정말 지옥 같다. 하루에 몇 번씩 웃는 내 모습이 지옥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