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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호 Jul 30. 2019

과학자의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바버라 매클린톡

 ‘과학’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은 엄청나다. 어떤 제품의 광고나 설명 등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이 사용되면 소비자는 제품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또 TV나 정부기관 등에서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흔히 과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과학적이라는 말이 이런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학이 지금까지 우리가 더 나은 삶과 생활을 영위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 기술이 이토록 편리한 삶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앎에서 비롯되는 과학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로 과학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이성’과 합리성의 이미지 때문이다. 과학자의 덕목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이 그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세간의 인식처럼, 과학은 실제로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철저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자연을 바라본다. 또한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론의 훈련을 통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감성도 필요하다. 자연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탐구하여 자연을 알아나가는 학문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곧 자연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일생을 과학에 헌신하곤 하는데, 이는 자연과 과학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감성이 과학에 대한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야만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다. 과학자로서의 이성을 유지하려면 호기심과 과학에 대한 열정 등과 같은 감성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과학자의 감성은 윤리를 지키는 데에도 이용될 수 있다. 과학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전쟁 무기를 만들었다. 위대한 화학자로 평가되는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대량살상 화학무기를 만들었고 실제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이시이 시로(いしい しろう, 1892~1959)와 요제프 맹겔레(Josef Mengele, 1911~1979)는 자신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잔인하게 수많은 인명을 생체 실험에 쓰는, 과학자로서의 연구 윤리를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공감 능력과 같은 감성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성공한 과학자들은 과학자 본연의 이성과 그 이성을 제어할 감성이 조화를 잘 이룬 사람들이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1929~)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지지해 오던 이론을 뒤엎는 결과를 발표하며 과학자로서의 이성을, 가장 필요한 건 열정이라고 말함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에 대해서도 역설하며 감성을 보여주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또한 과학적 회의주의자와 진화생물학자로서 이성적인 모습과 함께 과학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공한 과학자들 중 유난히 다른 과학자들보다 감성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었던 과학자가 있는데 바로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1992)이다. 


 바버라 매클린톡은 유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의 논문집이 빛을 보던 1900년과 유전학(genetics)이라는 말이 처음 생기던 1906년의 사이인 1902년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매클린톡은 어린 시절부터 학구열을 드러냈다. 훗날 이블린 켈러(Evelyn Keller, 1936~)와의 대화에서 매클린톡은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되는 게 나는 그렇게 좋더라고요.”, “이렇게 답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일은 정말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었어요.”라며 회상한다. 어릴 적부터 과학에 대한 열정과 지적 호기심이라는 감성이 크고 있었던 것이다.


 옥수수를 먹으며 왜 노란색 알맹이 사이에 검은색 알맹이가 섞여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한 번쯤 호기심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이 현상은 잡색 현상이라고 불리는데, 매클린톡은 이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나의 경우에는 옥수수의 알맹이 색깔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때, 노란색 알맹이들 사이의 검은색 알맹이들이 배열된 데에 규칙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었다. 자연의 무질서함도 결국 질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생각처럼, 매클린톡은 잡색 현상을 야기시키는 유전자의 불안정한 활동 속에서 규칙과 질서를 찾아냈다. 인접한 두 구역에서 한 구역에 돌연변이 발생의 빈도 수가 높으면 다른 한 구역의 돌연변이 발생 빈도 수는 낮다. 돌연변이 발생 빈도 수가 반비례하는 것이다. 이를 단서로 하여 매클린톡은 잡색 현상은 염색체의 분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이 분해가 제어되는 과정에 대해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매클린톡은 염색체에서 끊어져 나가 결실된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Ds라 명명하고, Ds의 활동을 조절하는 인자에 Ac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때, Ds가 염색체에서 떨어져 나간 후 이리저리 떠돌다가, 원래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자리잡는 일이 관측되었다. Ac 또한 Ds와 마찬가지로 염색체의 다른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이라고 한다. 매클린톡은 바로 이,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6년간 매클린톡은 심혈을 기울여 이 현상을 학계의 발표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콜드 스프링 하버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5년을 더 준비하여 다시 콜드 스프링 하버 심포지엄에서 발표했으나, 반응은 역시 차가웠다. 어느덧 매클린톡은 인격적인 모독과 함께 웃음거리가 되기까지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모든 생명에서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매클린톡에 발견에서부터 3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사실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매클린톡은 인정받았다. 이후에 암 연구와 의학, 면역학 연구 등에서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알려지며 매클린톡의 연구는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라는 것이 입증되었고, 결국 매클린톡은 노벨상을 받게 된다.


 매클린톡의 뛰어난 감성은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다는 건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다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 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답을 받았거든요.”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주었다는 이 말처럼, 매클린톡은 연구 과정에서 옥수수와 하나가 되었고, 옥수수와 대화를 시도했다. “실험하는 동안 그냥 물어 보면 돼···옥수수들이 가르쳐 준단 말이야···생명의 온전함과 나도 하나가 되는 거야.”. 매클린톡은 진정으로 연구 대상과의 일체화를 추구했다. 생명과학자의 연구 대상이란 샘명체이다. 매클린톡은 이렇게 모든 생명체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진 거이다. 이런 매클린톡의 생각과 능력은 다음 말들에서도 드러난다. “풀밭을 지나갈 때면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해요. 발밑에서 풀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거든요.”,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해요. 이런 매클린톡의 감성은, 연구 대상인 생명체, 유기체와 하나가 되어 교감한다는 새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매클린톡에게는 생명체에 공감하여 하나가 되는 일체화가 가장 객관적으로 생명체를 볼 수 있는 길이자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을 바탕으로, 다른 과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하여, 끈기 있게 연구해 발견을 이루어냈고, 다시 끈기 있게 그 발견을 학계에 발표하려 애썼다. 매클린톡의 감성은 과학에 대한 열정과 끈기, 연구 대상 생명체를 사랑하는 생명윤리와 함께 특이한 방법에서 비롯된 과학적 성과로도 나타났다.


 매클린톡에게 과학자의 이성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편으로는 매클린톡의 이야기에서 다른 과학자들의 이성이 잘 작동하지 못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매클린톡이 맞는 주장을 했음에도 30년 정도의 세월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인격적인 모독까지 들어야 했던 일이다. 지금 우리의 과학계도 맞는 주장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의 이성을 통해 검증해 보아야 할 때다. 


 나는 감성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친구들과 부모님, 심지어 선생님들까지도 “너는 감성적이니 인문계열로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는 식의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감성적인 면 덕분에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느끼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덕분에 과학에 대한 큰 열정을 가질 수 있고, 앞으로 연구를 하면서 연구윤리와 생명윤리에 더 민감할 수 있다. 또한 감성을 살려 과학을 대중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감성은 과학의 이성을 유지하고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과학자와 교육자가 과학도에게 감성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많은 과학도들이 이성과 함께 감성 또한 잘 발달시켜 함께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 아르망 트루소


알면 사랑한다.” - 최재천     



<참고문헌>

01. 장대익, ⌜다윈의 서재⌟,163p~168p ,바다출판사, 서울, 2014.

02. 이블린 폭스 켈러(김재희), ⌜생명의 느낌⌟, 9p~344p, 양문, 서울, 

   2001.

03. 나타니엘 컴포트(한국유전학회), ⌜옥수수밭의 처녀 맥클린토크⌟,   

  15p~383p, 전파과학사, 서울, 2005.

04. 송성수, “유기체와의 교감”,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 살림출판사, 2011,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48421&cid=42385&

  categoryId=42385&expCategoryId=42385). 

05. 이한음, “놀라워라, 생명의 의외성”, 옥수수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식량

   과 뻥튀기라는 간식거리를 제공했고, 최근 들어 화석연료를 대체할 연

   료 공급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화석연료 문제의 해결책 같았던 옥수

   수가 식량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은 그런 복잡성을 제

   대로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려면 더 강력한 기생체의 자극과 도

   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네이버 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

   sid1=110&oid=262&aid=0000000963), 2015.08.27.

06. 이성규, “사랑의 과학”, 여름 간식인 햇옥수수가 벌써 출하되었다는 소

   식이 들려온다.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해요.”,,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352133& 

   code=11171377). 2015.08.27.

07. 노벨 재단(유영숙, 권오승, 한선규), “전이성 유전인자 발견”, 바다출판

   사, 2010,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45559&cid=42567&

   categoryId=42569).

08. 위키백과, “바버라 매클린톡”, 바버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년 6월 16일 ~ 1992년 9월 2일)는 미국 하트퍼드 출생의 식물유전

   학자로 옥수수 유전학 분야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만큼 그녀

   는 연구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B%B2%84%EB% 

   9D%BC_%EB%A7%A4%ED%81%B4%EB%A6%B0%ED%86% 

   A1#.EC.9E.90.EB.A6.AC.EB.B0.94.EA.BF.88_.ED.98.84.EC.83.81.

   EC.9D.98_.EB.B0.9C.EA.B2.AC), 2015.08.28.

09. 김재희, “‘튀는 유전자’ 로 튄 매클린톡”, 근대과학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객관성’이고, 이는 절대 진리를 표방하는 근대과학이 정당성을 

   갖는 최고의 근거였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건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다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네이버 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 

   sid1=001&oid=036&aid=0000007797), 2015.08.28.


※ 이 글은 2015년에 쓰인 글으로써, 사실상 살면서 처음 써 본 글입니다. 경험을 쌓자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쓴 글이라 지금 읽어 보니 매우 부끄럽지만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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