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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Feb 15. 2019

버드나무의 삶을 동경했던 아이

  텅 빈 운동장에 홀로 남겨져 정글짐을 오르곤 했다. 힘 센 친구가 도맡아 하던 장길산 역할은 이내 내 몫이 된다. 신나게 정글짐을 누비는 것도 잠시, 당시로는 알 수 없던 감각들이, 지금에서야 짐작해보는 외로움과 쓸쓸한 고독이 밀려올 때쯤이면, 의적놀이를 멈추고 정글짐 꼭대기에 걸터앉아 버드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축 늘어진 모습에, 적당히 게으름을 머금고 있는 그의 나른함과 살랑이는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던 가지의 결들이 내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가끔은 할머니의 인자한 손길같이, 가끔은 고운 추억을 꺼내올 때 짓게 되는 미소같이, 한결같은 느긋함에 매료된 나는 버드나무를 내 마음에 옮겨 심어놓고 자주 꺼내보곤 했었다. 그 시절에 나는 흘러가는 대로 세월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고 싶었다. 버드나무처럼, 자유롭게. 그 자유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은 모른 채. 어쩌면 책임의 무게만큼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버드나무처럼 살고 싶던 내 앞엔 수많은 길들이 놓여 있었지만 자갈길들은 피해 걸어왔다. 산 속으로 나있던 길은 오르기가 두려워 내려가는 기쁨을 외면해왔다. 강을 건너야 할 땐 사공이 나를 대신해 건너 주었다. 그렇게 불편한 길들은 피해가며, 걷고 싶은 길만 골라 걷는 것이 자유롭게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는 마주해야 하는 모든 길들 앞에서 갈 곳 몰라 정처 없이 헤매길 수차례, 생각의 무게는 늘어나고, 불편한 진실들을 매일 조우하며, 패자부활전 없는 삶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썰물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시간이라는 밀물에 떠밀려 영혼의 허기를 느끼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버드나무 앞에 서 있었다.

   

  자유를 욕심낸 냉혹한 대가의 체불과, 삶이 저당 잡힌 지금에서야 비로소 버드나무가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와 책임감의 무게가 보인다. 그로 인해 가지들의 허리가 그다지도 굽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허리를 이내 꼿꼿이 펴지도 못하는 버드나무의 가지 하나하나는 책임감으로 점철된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작은 소우주이다. 한 평짜리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로 밤새 책과 씨름하는 공시생의 무게가, 가장이라는 책임에 폭력의 현장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던 죄책감의 무게가, 당연한 권리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했던 장애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의 무게가, 목장갑 두 개를 껴도 뚫리는 강추위 속에서 생계를 위해 연신 허리를 굽혀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버드나무의 가지들은 오늘도 저를 흔드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른히 흔들린다. 자신이 이고 있는 무게만큼만, 딱 그만큼만 자유로이, 무겁게 흔들리는 버드나무를 쓸쓸히 바라본다. 이내 눈시울 붉어져도 서러운 눈물은 버드나무 앞에 흘릴 수 없는 약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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