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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Dec 09. 2021

똥손이지만, 카메라를 샀어요.



"찰칵찰칵" 

"왼쪽분 좀 더 안쪽으로 오세요."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보실래요?"



카메라는 내가 만지면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투박하고 묵직한 다이얼. 작고 촘촘하게 박혀있는 버튼, 머리의 시크한 남성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검은색 바디. 쓸데없이 커 보이는 렌즈. 공연예술을 전공한 나에게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은 시각매체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연예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는 걸 의미했다. 마치 애플과 삼성의 관계처럼 카메라라는 도구를 견제하고 두려워하며 묘한 질투심을 느끼곤 했다. 



10년을 넘게 해왔던 연극을 그만둔 어느 날 카메라를 샀다. 사버렸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찍어본 경험이 전무했지만 무턱대고 샀다. 아무도 모라고 한 적 없지만 누가 왜 무대를 배신하고 카메라를 선택했냐고 물어볼까 오른쪽 겨드랑이 사이에 꽁꽁 숨기듯 가지고 다녔다.





당신이 왜 샀는지 물어본다면 두 가지 대답을 하고 싶다.



첫째, 유튜브를 하고 싶다.

둘째,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멋진 사진 한 장을 같이 올리고 싶다.



엄마가 물어본다면 한 가지 긴 대답을 하고 싶다.



"그냥. 좀 멋져 보이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돈도 못 벌고 칙칙한 지하 극장에서 배고픈 생활 따윈 그만두고 '크리에이터'라는 명함을 달고 밝은 대낮에 햇살 받으면서 카페에서 맥북 펼쳐 놓고 일하고 싶었거든요."



감사하게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나는 내가 속물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고 카메라 생활을 시작했다. 소심한 초보 작가로서 내가 처음 찍는 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멋진 풍경이 있는 로케이션을 찾아갈 시간이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니는 길. 내가 매일 보는 것들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뜻밖에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서있던 신호등. 그런데 누군가 스마일 스티커를 잔뜩 붙여놨다. 5년 넘게 다닌 길인데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박하고 자잘하지만 예쁜 어떤 감성을 주는 첫 번째 발견이었다.



어느 아침에 찍은 누군가의 자전거... 매일 서있는 던 건데 이제야 발견했다.



몰랐던 발견들은 계속 이어졌다.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의 모양. 길고양이.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아계신 어르신들의 달라지는 옷. 절묘한 골목길의 구도와 아찔하게 높은 아파트...



카메라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나에게 일상에 숨어있는 자잘한 아름다움을 보게 만드는 친구였다. 따지고 보면 세상 무엇이든 각자 어떤 것을 보게 만든다. 그림이든, 책이든, 영화든, 내가 포기한 연극이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볼 에너지와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똥손인 내가 잘 찍는다는 마음을 먹는 내는 것은 마치 이 브런치 글로 노벨상을 받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크리에이터 건 디지털 노매드 건 우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그저... 내가 발견하는 소소하고 자잘하고 작고 소박한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눈을 가질 수만 있다면 된다. 지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외면하며 다 안다며 못 보고 지낸 묘하고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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