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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Dec 30. 2021

나의 영웅은 '125cc 스즈키' 를 탄다.

배트맨에겐 배트카가 있지만 삼촌에겐 125cc 스즈키 오토바이가 있다. 작지만 단단하고 빠르고 민첩하다. 허세나 치장 따윈 찾아볼 수 없으며 필요한 부품들이 필요한 자리에 달려있다. 특히 뒤에 달린 빨간색 트렁크는 수많은 음식을 담아 살짝 닿긴 했지만 영롱함은 잃지 않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곤 열심히 달린 그 오토바이는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삼촌은 왜 오토바이를 타게 되셨을까? 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삼촌과 아빠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도박으로 인해 부유했던 집안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아직 어렸던 아빠와 삼촌에겐 큰 충격이었다. 형제는 이때부터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런 환경을 제공한 할아버지를 향해 원망과 반항을 보이느라 갖은 비행과 사고를 치고 다녔다. 반면 삼촌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지금도 고졸이 어디 가서 일하기 힘든데 당시는 어땠을까? 하지만 삼촌은 닥치는 대로 가능한 일들을 했다. 유아용품 배달, 김밥집, PC방, 식당, 택배 그리고 지금은 치킨집 사장님이 되셨다. 



삼촌은 최악의 상황에서 주저앉기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오셨다. 자동차는 앞에 차가 가로막으면 못 움직이지만 삼촌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는 오토바이처럼 그렇게 본인의 삶을 헤쳐갔다. 한 번도 나에게 원망이나 부정적인 말을 하신 적 없었다.



삼촌이 오토바이를 안 탄 때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는 삼촌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당시 붐이었던 PC방을 차렸지만 너무 많은 투자금에 비해 적은 수익률로 1년을 버티다 결국 정리하셨다. 얼마 안 남은 돈으로 작은 배달 식당을 차리셨고 오토바이를 다시 타셨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일하며 돈을 모아 결국 아파트를 한 채를 사셨다.



삼촌이 오토바이를 안 탄 두 번째 사건은 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보증으로 인해 삼촌의 집이 날아갔다. 우리 가족 전체가 아버지를 원망할 때 삼촌은 원망 대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오토바이와 가게를 팔아 월세방을 얻었고,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셨다. 그 택배 일을 하시며 할머니를 부양했고, 2명의 사촌 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셨다. 그렇게 몇 년 후 결국 본인만의 치킨집을 차리셨고 125cc 스즈키 오토바이를 사서 10년 넘게 타고 다니신다.



"어. 삼촌이야. 잠깐 통화되니?"



얼마 전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치킨 집이 장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다른 아이템을 찾는 중이라며 젊은 세대들이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시는 거였다. 전화기 너머 시동이 걸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 삼촌. 이제 좀 쉬세요. 애들도 대학 졸업했고, 삼촌도 일 많이 하셨잖아요. "



통화하는 내내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했다. 내 영웅이 오토바이를 안타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마치 아이언맨이 나이가 들어 슈트를 못 입는 걸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내가 아는 것들을 전부 말했고 뭐든 돕겠다고 언제든 불러달라고 했다.



" 됐어. 바쁜데 뭘. 삼촌이 또 연락할게. "



절대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려는 깔끔한 성격.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본다면 나는 바로 삼촌을 말한다. 어른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어른스러운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삼촌.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몇백억 사업가도 아니고 멋진 요트도 없지만 나는 삼촌과 그 오토바이를 존경한다. 검은색 칠에 뒤에 달린 빨간 트렁크. 작지만 단단한 바퀴. 누가 봐도 딱 배달 오토바이이지만 난 삼촌을 생각할 때면 해가진 저녁 가게 앞에 세워진 채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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