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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Dec 15. 2021

두 번째 면접

"오셨어요? 제가 나갈게요."



2층 로비엔 건물 전체를 볼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ㅁ자 구조의 이 건물은 서로가 서로의 문을 볼 수 있다. 크기가 굉장히 커서 마치 오래된 저택 같았다. 곳곳에 '창업', '스타트업', '개발', '지원' 등이 적힌 포스트가 붙어있었다. 저번 면접과 달리 마음이 편했다. 나도 시작하는 입장이고 이곳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 그런 걸까? 공고에 적힌 내용으로는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고 앱에 들어갈 예시문을 작성할 작가 업무를 찾는 일이었다. 나를 데리러 나오겠다는 대표를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스타트업 대표면... 나보다 어린 사람이 아닐까? 나이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겠다...'



살짝 불안해지려는 찰나 청바지에 연두색 긴팔티를 입은 대표가 나왔다.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다행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고민은 안 해도 된다. 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보안시설을 들어가는 듯 지문인식으로만 통과가 가능한 출입구를 지나니 수많은 작은 문이 나왔다. 스타트업 입주 시설이라 설명하며 그중에서도 신생 스타트업은 이쪽에 모여있다 설명해줬다.



스타트업은 시끄럽고 분주하게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너무나 고요했다. 예전에 살던 고시원 생각이 났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천정이 뚫려있어 그 공간 안의 모두가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각자 고군분투 하지만 모두 같은 꿈을 꾸는 비유에 딱 맞는 구조였다.



3평 정도의 작은 방안에 대표와 나는 마주 보고 앉았다. 그가 꿈을 펼치는 곳이자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이기도 했다. 작은 책상 4개가 각각 벽에 붙어 있고 사무용품과 앱 개발 관련 책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표의 책상엔 맥북이 놓여있었다. 그 또래 남성이 사용하기엔 어렵고 불편한 장비일 텐데 그걸 사용한다는 게 놀라웠고, 트랙패드 대신 마우스를 연결해 놓은 게 살짝 귀여웠다. 청바지가 아직 어색해 보이는 것처럼 그에게 맥북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어색함이 있는 물건인 것이다. 정말 '스타트업 대표' 스러움이 느껴졌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서로 궁금하진 않지만 처음 시작하는데 자기소개 만한 것은 없다. 그렇게 분위기를 풀어가며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는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간단한 작문을 요구했다. 반대편 책상에 놓여 있는 노트북에 엑셀 창을 띄웠다. 예시문 3개 아래로 단문 형태의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테스트였다.



"30분 정도 드릴 테니 한번 써보세요."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면 벌벌 떨었겠지만 글쓰기는 너무 편한 테스트였다. 게다가 이 공간과 대표를 직접 보고 나니 부담감도 없었다. 미끄러지듯 술술 적어 내려갔다. 면접만 아니었으면 노래라도 흥얼거리면서 느슨하게 앉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반듯하게 앉자 평소보다 조용하게 키보드를 눌렀다.



"자, 한번 볼까요?"



그는 내 문장들을 훑어봤다. 그가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이미 스캔이 끝난 사무실을 둘러보는 척했다. 



"글을 보니 지욱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네요. 같이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연봉 및 근무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연봉은 이미 공고에도 적혀있었지만 큰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 같은 나이 많은 신입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습 3개월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형편없는 환경일 수 있지만 지금 나에겐 출발을 위해 딱 어울리는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대표님은 두 딸이 있는 가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중년이라는 나이와 가정환경을 고려했을 때 가장으로써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위험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중년 남성들은 대부분은 안정을 추구하거나 과거의 영광에 젖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내가 만난 대표님은 제대로 된 어른이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풍경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 어른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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