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에 서너 번은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다닌다. 학생 신분에 티켓값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운동화 하나를 살 때는 석 달을 고민하면서 티켓팅은 3초를 고민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 이어폰을 두고 나오면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다. 이어폰 때문에 귀에 염증이 날 지경이라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구매했다. CD를 야금야금 모아 50여장을 돌파했고, '군인 어학용'이라는 싸구려 CDP를 구매했다 한 달만에 고장이 나기도 했다.
음악을 줄창 듣는다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다. 학창시절 나는 음악선생님도 고개를 저은 '고음불가'였고, 4년을 다닌 피아노 학원에서는 체르니 100을 채 떼지 못했다(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최근 큰 맘 먹고 산 통기타는 예상대로 훌륭한 방구석 장식품이 되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재능은 둘째치고 나의 끈기 부족도 문제겠지만 도통 실연에는 흥미가 가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건 음악을 듣고 아티스트를 찾아보고, 장르를 찾아보고, 평론을 찾아읽는 활동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대중음악사에 대한 나름대로 빠삭한 로드맵이 존재한다. 누군가 추천을 요구하면 인공지능처럼 취향을 파악해 최적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곤 한다. 화성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지만 나름대로 '듣는 귀'는 발달했다는 일말의 자부심이 있다.
나의 열정은 나로 하여금 진지하게 음악쪽 진로를 고려하게 만들기도 했다. 공연기획이나 음원유통과 같은 음악산업계 취업도 생각해봤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도 준비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 사람에게 길은 좁고 열악했다. 벽에 부딪히면서 내 꿈은 추진력을 잃었고, 도무지 다시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몇 번 두들겨맞고 나니 회의감이 들었다. 조금 유별나게 좋아하는 취미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걸 직업으로 삼으려고 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과연 나의 재능없음과 박봉을 모두 견딜 만큼 이 길이 좋은 걸까? 대답할 수 없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직업이 될 순 없다는 사실.
그러면 나는 뭘 하면서 일생을 보내고 싶은가.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시기에 서 있지만, 이제 나는 많이 지쳐 있다.
여전히 나는 음악으로 위로를 받고, 음악을 틀어 두고 일을 하며, 음악을 듣느라 잘 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음악을 생업으로 삼을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존재하고, 음악은 그 일들로부터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로 그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취미를 업으로 삼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취미를 그저 취미로 남겨두고 욕심내지 않는 것도 하나의 큰 결단이고 용기일 수 있다. 현실적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들릴 소리지만 나는 마치 새로운 깨달음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은 현실에 두들겨맞고 있는 이상주의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불명확한 내 앞날처럼 이 글도 결론 없이 모호하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