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처음 경험했던 건 엄마를 따라 주말마다 중심가를 돌아다니던 초등학생 때였다. 아직 커피를 마실 줄 몰라 핫초코를 홀짝거리면서, 언젠가는 커피의 향 뿐만 아니라 맛을 음미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면서 카페모카,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달달한 커피류를 마셨다. 그렇게 배운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고3 자습시간에 톡톡히 써먹었다. 고함량의 카페인이 든 캔커피를 홀짝이며 <수능특강>을 풀던 그 시기 내 유일한 꿈은, 어서 대학생이 되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과제를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실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게 된 데에는 원두의 깊은 맛과 향이라는 이유 외에도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는 씁쓸한 이유도 존재했다. 마시는 커피의 주종목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의미 역시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 카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카페를 그런 용도로 들르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당시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내 카페 방문 이유의 족히 70%는 차지하고 있을 그것은 바로 '업무'였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과제를 하는 대학생의 실상은 그렇게 멋있지만은 않았다. 카페란 도저히 집에서 집중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는 공간이었고, 음료는 자릿세에 불과했다. 분위기 있는 은은한 조명 같은 건 모니터를 바라보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었으며, 나에게 카페 선정의 기준은 오로지 실용성이 되었다. 콘센트 유무, 와이파이, 접근성, 벽에 붙어있는 자리인가. 기타 등등.
이런 팍팍한 시각으로 카페를 바라보다 보니 예쁘고 조그마한 개인카페는 오래 앉아있기에 눈치가 보일 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2, 3층짜리 프랜차이즈 카페가 제격이었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그런 카페 브랜드들에 내 용돈의 절반씩은 매달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 번 들를 때마다 못 해도 3시간 이상은 앉아있게 되니까 다른 음료도 시켜야 하고, 그러다 보면 당연한 지출이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였고 집에 있으면 유혹이 너무 심했다. 침대라든지, 침대라든지, 침대 같은 것들 말이다. 다행히도 카페에 돈을 투자한 만큼 나의 학점이 보장되었으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서 과제를 해야 할 때에는 '카페 백색소음 ASMR' 따위를 틀어 두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카페 업무 의존증 말기'정도로 낙인찍을 만 하지 않을까.
나처럼 카페 갈 때마다 노트북이며 충전기, E-book 리더기, 공책, 필통, 이어폰 등등을 이고지고 다니면서 편리한 카페를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을 부르는 용어를 발견했다. 바로 '디지털 유목민'이다.
이 용어를 활용하는 용례는 다양해서,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유목민이란 회사를 떠나서도 24시간 카페로 향해야 하는 직장인들이나, 밤샘 과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이 아닐까. 이들의 모습에 긍정적인 뉘앙스의 '자유'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나처럼 까다롭고 예민한 디지털 유목민들에게는 완벽한 카페를 찾는 것 역시 일이다. 기껏 카페를 찾았는데 콘센트가 없거나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나처럼 커피 맛에 민감하고,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구정물 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며 일이 잘 될 리 없다. 원두 맛뿐인가, 자리와 자리 간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으면 도저히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견딜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소음이 심해서도 안 된다. 음악 소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댄스가요를 틀어대는 곳이어서도 안 되며, 화장실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체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카페가 어디에 있을까 싶겠지만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나의 삶의 터전이나 출퇴근지가 바뀌는 경우에는 그 새로운 동네의 카페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탐방을 떠나곤 하며, 머릿 속에 완벽한 카페맵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나는 그 지역에 편안히 적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카페에는 약간씩의 단점이 존재한다. 찾아가기에 거리가 너무 멀다거나, 화장실이 있긴 있는데 상가 화장실이라거나, 소파에 단 한 번도 빨지 않은 것처럼 얼룩이 가득하다거나, 와이파이가 너무 느리다거나.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단골이 되고 나면 갈 때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소한 문제들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아직 완벽한 카페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동네의 단골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작성하고 있지만, 여기는 화장실이 영 꺼림칙해 오래 앉아있기는 어려운 곳이다. 나처럼 까다로운 디지털 유목민, 혹은 카페 유목민을 충족시켜 줄 카페는 과연 어디쯤 숨쉬고 있을까? 어쩌면 있더라도 그런 곳은 장사가 되지 않아 금방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