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나처럼 흔한 좌충우돌 가족영화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틀었다가는, 리얼한 가족들의 불화 폭격에 다소 어리둥절해질 수 있다.
'노랑노랑'한 귀여운 영화의 색감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가족의 모습은 날 것 그대로에 가깝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들의 성격이나 사연 모두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마냥 불행한 가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화목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어지간한 가족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목인 '리틀 미스 선샤인' (한국어판에서는 어째선지 앞 두 단어를 바꿔 표기했다)은 주인공 꼬마 올리브가 간절히 우승하고 싶어하는 어린이 미인대회의 이름이다. 마침내 전국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게 되자 올리브네 가족은 하는 수 없이 노란 고물차를 타고 대회 장소를 향해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성공의 9단계 이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아빠 리처드, 가족들에 치여 지칠 대로 지친 엄마 쉐릴, 마약과 음담패설에 푹 빠진 할아버지, 묵언투쟁을 벌이는 파일럿 지망생 오빠 드웨인, 그리고 애인에게 차여 자살기도까지 했던 삼촌 프랭크까지.
가족영화라기에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이 가정은 도저히 평화를 이룩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저런 사건을 마주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했던 부분을 하나 꼽자면, 파일럿을 꿈꾸는 드웨인이 본인이 색맹임을 깨닫는 장면이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의 위로도 뿌리치고 좌절하는 드웨인에게 올리브가 다가가 껴안으며 말없이 위로하는데, 이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는 엄마를 껴안아 드리라며 올리브에게 했던 드웨인 본인의 충고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그 아들역시 마찬가지다. 마약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들 리처드는 그러다 큰일 난다며 소리치지만, 추진하던 사업이 실패해 낙담하고 있을 때에는 아버지에게 역으로 위로받는다. 이처럼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감의 장면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위로하고, 그 위로는 또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런 방식으로 가족들은 작위적이지 않게, 그렇지만 진심어린 위로를 서로에게 조금씩 전달한다.
이 작품의 정말 좋은 점은 이와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이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 대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고물 자동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여전히 대화가 없을 것이고, 여전히 자주 다툴지도 모른다. 억지스러운 자기성찰이나 극단적인 관계의 변화 없이도, 상실과 좌절과 위로와 연대의 순간을 겪어 오면서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훨씬 더 끈끈해졌을 것이다.
모난 인물들의 성격을 개조하지 않고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가족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좋았다. 원래 가족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여담이지만, 놀랍게도 '리틀 미스 선샤인'과 같은 미국의 어린이 미인대회는 실제로 존재한다. 검색해본 결과 최근까지도 개최되고 있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 등장한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인형 분장을 한 아이들의 모습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단순히 영화 속의 장치가 아니라 현존하는 대회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니. 소아성애를 철저히 단속한다는 미국의 양면성에 또다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