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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sson May 09. 2019

아이들, 어른들, 우리들

영화 <우리들(2016)>

10대의 나는 '청소년 문학' 마니아였다.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교 도서실을 집처럼 드나들면서 청소년 소설을 읽곤 했다. 이런 책들은 세계 명작이라는 외국 소설들보다 훨씬 재밌었고 술술 읽혔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보니 아무래도 더 현실감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작가들이 모두 '너무나도 어른들'이라는 점이었다. 어른이 아이의 시점에서 글을 쓰는 것은 내게는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른들이 쓰는 대사도, 어른들이 그려내는 상황도 아이인 나에게는 부자연스럽게만 보였다. 나는 툭하면 투덜대고는 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죄다 잊어버렸나봐?"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은 점은 그 투덜거림이 어느 정도 진실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다. 물론 기억을 되살려 낼 수는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나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걸 느끼는 때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 다루는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나도 정형화되어 있어 어른들이 이런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자신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분명히 다르다. 윤 감독은 철저히 아이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상황을 제시하되 디테일한 부분은 어린 배우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 작품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아이들과 교감하며 촬영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섬세한 디렉팅으로 윤 감독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아름답거나 귀엽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웃으며 뛰어노는 장면 속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서열과 배척, 편가르기가 숨어있다. 어른들이 보호해줄 수 없는 그들만의 정글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조용히 상처입는다.


놀라운 지점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결코 100%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들만의 일로 바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일을 어떻게든 우리들의 힘으로 처리하고자 한다. 즉, 아이들의 복잡미묘한 권력관계를 (자의식 과잉인) 어른들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식의 무성의한 서사가 아닌 것이다.


대신 아이들의 독립적인 시선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우리들>이 훌륭한 작품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어른이 되면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운다. 지난 달에 안부를 주고받은 친구가 오늘 갑자기 철천지 원수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어른들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아이들에게 무법지대이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감추지 않는다. 외모, 성격, 집안, 성적,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노골적인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를 만들고, 상대를 소외시키기도 한다.


주인공 선과 지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겐 서로 건들지 말아야 할 열등감의 근원지가 존재한다. 지아에게는 그것이 엄마의 부재이고, 선에게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선은 의도하지 않게 지아의 열등감을 먼저 자극하게 되고, 지아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선을 다시 배척한다. 선은 이에 반박해 지아를 공개적으로 모욕한다.


보는 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이야기 구조는 아이들에게 관계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 것인지 말해준다.



나는 <우리들>을 보면서 그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누구도 나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그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이의 감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시선으로 포장된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만의 싸움이 존재하는 무법지대의 모습.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들어진 개체들이다. 아이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은 더욱 견고하게 성립된 사회의 권력다툼에 적응하는 것으로 성장한다. 아니, 과연 이런 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들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본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또 우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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