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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분리 수면

by 펑예

이번 회는 모처럼 육아 에세이로 돌아가볼까 합니다.

제 업의 80프로는 이쪽이니 말이지요.







"만세~~~!!!"


고망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 끝나고 한국나이 일곱 살(2026년)에 계획한 목표 중 하나는 바로 '분리 수면'이다. 그런데 이사를 계기로 본인의 방을 꾸며주면서 장대한 프로젝트가 일찍 시행되었다.


살아가는 공간이 넓어지고 본인의 방이 생긴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은 본능적인 걸까?


"우리 이사하게 되었어. 이 집은 바이바이하고 새로운 집으로 가는 거야. 더 넓은 집으로. 고망이 방도 따로 있어."


이렇게 말해줬을 뿐이고 아직 집을 보기도 전이었지만 단번에 좋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서 갔으면 좋겠다고도 했고 이사 후에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집이 아주 넓어졌다고 자랑하듯 말했단다. 게다가 연일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며 초대장을 써댄다.(그걸 계기로 벌써 글씨를 이만큼 쓰는구나 했음;)

집은 거거익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아니면 J가 한 번씩 집이 좁다고 한탄하는 뉘앙스를 알아챘단 말인가?


기세를 몰아서 "이제 여기는 고망이만의 방이고 여기서 혼자 자보는 거야."라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고심해서 고른 민트색 벽지와 구름모양 스탠드, 촉감 좋은 이불 덕인가? 감개무량해지며 갑자기 신생아 시절부터 시작된 '재우는 인간'으로서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새벽마다 안고 큰 볼 위에 앉아 통통거렸던 일, 포대기에 업고 재운다고 동동거리던 일, 유모차로 동네 수십 바퀴 돌고 밤만 되면 드라이브를 나가던 때도 있었다. 등이 유난히 예민했는지 유모차나 차로 재운 걸 침대에 눕히면 또 발딱 눈을 뜨고 울었고 안 깨우려고 숨 죽이며 나가고 재우고 있는 와중에 J가 쿵쾅거리며 들어오면 히스테리가 폭발하기도 했다.

잠 패턴이 꽤 안정화된 후에는 밤잠을 일찍 재우는 게 전쟁이었다. 불을 끄고 자장가를 불러도 체력이 점점 좋아지다 보니 침대에서 수십 번 씨름을 하고 앞 구르기 뒷구르기를 해야 겨우 잠이 들었다. 최대 2시간이 넘게도 곁에 있어봤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 정도가 되면 거의 나도 괴물처럼 굴게 됐다. 그러니 잠 트러블이 심한 아이를 둔 부모가 한 번씩 커뮤니티에서 죽고 싶다고까지 하는 말이 이해도 된다. 잠은 저엉말 중요하니까.


그런데 혼자 침대에 쏙 들어가 굿나잇 인사를 하다니! 아직 멀뚱한 눈이긴 하지만 "좋은 꿈꿔~"하고 나오면 혼자 뒤척이다 자다니. 물론 새벽마다 깨서는 내 옆으로 기어들어오곤 하지만 얼떨떨한 일이다.


이렇게 대견한데... 그래도 걱정은 그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지 못한다. 어느덧 일곱 살을 앞두고 있고 내후년이면 입학을 한다. 그 사실이 마음을 때때로 조급하게 만든다. 며칠 전 오랜만에 엄마들끼리도 교류하는 어린이집 친구 둘과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성향 비슷한 두 녀석은 이미 신나게 같이 그네를 타는 중. 우리가 나타나자 리더십 넘치는 한 친구가 반갑게 맞아주다가 그네는 두 대뿐이고 노는 흐름을 깰 수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쑥스럽게 웃고 있는 고망이에게 "그네는 우리만 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네? 그러곤 지들끼리 깔깔대며 장난치기 시작한다. 내가 봐도 흐름이 너무 빠르다. 당연히 고망이는 플로우를 탈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거기에 끼려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해진 건지 진짜 별 관심 없는 건지 다른 곳에 가서 논다.


아이들끼리 있을 수 있는 흔한 광경인데, 친구들과 자연히 섞여 놀고 못 섞여노는 것에 일희일비하고 마치 그것이 실적처럼 느껴지는 나로서는 사실 씁쓸했다. 게다가 그것도 크게 재미있진 않았는지 이러쿵저러쿵하다가 두 집이서 먼저 가버린다. 지네들끼리만 친하게 지내고 우리를 따돌리나? 그런데 섭섭하다 한들 어쩌겠나. 다들 각자 애들 챙기기 바쁜데, 했지만 울긋불긋 낙엽이 예쁘게 떨어진 놀이터 모습이 어째 더 쓸쓸해 보여서 동생에게 이 사실을 문자로 고했다. 그러자 바쁘신 중에도 바로 답이 날라왔다.


- 나쁜 년들.

심플하면서도 거침없는 공격에 웃음이 터졌다.


- 하나는 애가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하니 신경 쓰여서 그랬고 하나는 더 어린 동생도 있어서 그랬나 보지.

- 하여간 나는 언니네 편이니까 걔네가 나쁜 거야.


이성적이지 못하고 편협하고 우아하지도 않지만 이런 반응은 때때로 꽤나 위로가 된다. 어차피 대놓고 할 건 아니니 무해하잖아? 그나저나 저 친구들과 내년에도 같은 반을 해야 하는데 종종 저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무리 속에 끼어들기가 굉장한 숙제로 다가왔고 저렇게 선을 그어버릴 때 고망이가 느낄 소외감에 대해 상상하며 그 위험한 '내 아이에게 감정이입'에 들어가려다... 겨우 빠져나왔다. 자칫 잘못하면 빠져들어 멘탈을 조저버리고 상황까지 악화시키는 호르몬의 마수! 대신 '우리 편 최고'라는 동생의 교훈을 되새겨 회로를 돌려본다. 그러니 나오는 질문.


'왜 꼭 껴야 돼?'


왜 불편함을 감수하고 무리에 껴서 놀아야 하나.

앞으로는 이렇게 해줘야겠다. 무리에 끼는 연습을 안달하며 시킬 것이 아니라 굳이 끼지 말라고, 그리 재밌는 일도 아니라고. 그러다 본인이 껴보려고 하면 껴보되 거절당하면 바로 '치사하네' 해버리고 돌아서라고, 그게 멋있는 거라고 말해주련다. 다수의 중심에 들어가는 게 최고가 아니라고(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는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면 변방에도 즐거운 것들이 많다고 말이다. 물론 주위의 평가 "쟤는 애들하고 못 어울리는 애, 쟤는 잘 어울려노는 성격 좋은 애"엔 귀를 닫아야 할 것이다.


물론 외로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외로움을 피해 사는 방법은 없어. 그걸 잘 안고 살아야지. 넌 엄마 없이도(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자는 대단한 녀석이잖아? 못생긴 나쁜 녀석들 하고는 안 놀면 그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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