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러에게 필요한 건 해외 리조트 여행이 아닌 대가족 리조트 여행
대가족 여행. 사실 결혼 전이라거나 조금이라도 어렸다면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그런 여행이다. 물론 나름 친밀도가 있는 친척들이긴 했지만 나이 차이가 8살 이상은 나는 손윗 친척들과의 단체 여행이 뭐 그렇게 편하겠나. 하지만 나로선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고, 둘째 형부가 근처 리조트 회원권으로 그 인원들이 수용 가능한 숙소를 잡을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오케이 했다.
리조트라면 보통 물놀이 시설이나 각종 오락 시설이 있어 고망이의 놀이 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했으니 내 입장에선 마다할 게 없었다.
고망이는 첫날부터 신이 났다. 숙소는 복층 구조에, 거실엔 대가족 집 소파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가운데 아버지 1인용 소파 양옆으로 2~3인용 소파들이 배치된 형태) 그것이 본인에겐 정글짐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흡사 원숭이처럼 계단을 오르내리고 소파를 넘나들었다. 게다가 어린이는 자신 뿐이라 귀여움도 독차지였다. 낯가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모할머니에게 앵기고 나도 어려운 형부들에게도 앵겼다.
봐주는 어른들이 열 명이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소파에서 조금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옆에 앉은 이모가 봐주었고 내가 밥을 먹는 동안엔 할머니들이 같이 놀아주었다. 자연, 엄마 껌딱지도 사라졌다. 심지어는 언니, 동생과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 나들이도 두어 시간 하다 왔지만 고망이는 "어, 왔어?" 하는 얼굴로 나를 볼 뿐이었다. 게다가 요리사들은 네댓이나 되고 공수된 물자도 많아 식사는 늘 풍성했고 디저트도 넘쳐났다. 독박 육아 노동자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로또 맞은 여행'이었다.
새삼 과거 대가족 형태에서는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당연하다는 듯 여럿 나았을 것이다. 조력자들이 여럿이니 주 양육자의 노동 강도가 물론 덜 했겠고 아이도 일상적으로 여러 어른들(+또래들)을 대해야 했으니 요즘처럼 사회성 부분을 걱정하는 일도 적었을 것 같다.
"어째 또 훌쩍 커진 것 같네."
3박 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J가 고망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구체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졌다고 느꼈고 언어치료 선생님은 비언어적 요소의 소통이 늘었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이 여행이 고망이의 성장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우리에게 좋은 여행이란 어쩌면 시설이 좋고 멋진 환경에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여행인 걸까?
모쪼록 또 끼워줘요, 대가족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