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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션이 안 오를 땐, 책 쇼핑

이달의 책 쇼핑

by 펑예

최근에 고망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다 큰 유치원으로 옮긴 친구의 엄마를 만나 차를 나누었다. 그는 둘째를 이제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어서 모처럼 시간이 생겼는데 갑자기 자유 시간이 생기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뭘 하며 보내야 할까요?"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밥 해 먹고 유튜브 좀 보면 시간 다 끝난다고 하려다가 이 질문의 의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잠시 생각했다. 좀 더 생산적이고 '있어 보이게' 말이지.


"운동하고 영어 공부하고... 책도 좀 읽고요."


오, 하는 눈으로 보더니 책도 좀 읽는다는 대목에선 더 눈이 동그래진다. 왜 책과 거리 있게 생겼나? 그런데 죄책감이 밀려온다. 사실 최근엔 독서 활동이 지지부진했다.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선정한 지 몇 주가 되었으나 아직 10프로도 못 읽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유튜브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하나 쭉 보는 것도 아니다. 이거 봤다 저거 봤다 하며 파도를 타는데 좀처럼 벗어나지를 못한다. 화요일도 되고 했으니 유튜브를 '탁' 끄고 알라딘을 열어본다. 쇼핑을 하다 보면 의욕이 생길 것 같아서다.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증보판이 나왔네? 이건 바로 장바구니 행이다. 믿고 보는 작가기도 하지만, 머리를 좀 쓰게 하는 독서의 지도가 될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소싯적에 빠져 읽던 소설 <죄와 벌>에 이어 워낙에 유명하지만 읽을 엄두는 못 내던 <공산당 선언><인구론><종의 기원><역사란 무엇인가><사기> 등의 고전들을 소개한다. '지성인을 꿈꾼다면 읽어야 할 최소한의 독서 목록'이라는 느낌이다. 작가님의 가이드를 따라 지성인 맨 마지막 대열에라도 껴보고 싶은 욕망이 부풀어 오르는 책.


다음으론 <행복한 철학자>를 넣어본다. 카운슬링 교수이자 소설가인 우애령 작가의 작품인데 최근 예능 프로그램인 유퀴즈에 그의 딸, 엄유진 작가가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딸은 인스타에서 인기가 있었던 웹툰 '펀자이씨'의 작가라고 했다. 인터뷰는 본인의 웹툰 이야기보다는 철학자인 아버지와 사는, 이제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된 어머니의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다소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어머니의 일화들이 소개되면서 과거 어머니가 펴낸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삽화 때문인가? 어릴 때 좋아했던 장 자끄 상페 작품들이 생각났다.



행복한철학자.PNG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좀 무식하게 얘기해서, 한국어로 책 내는 최고 지성인이 유시민이라면 영어로 책 내는 최고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을 보며 통찰과 새로운 시각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이 읽을 만하게 써낼 줄 아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것도 유시민 작가와 유사하다. 이번엔 핫 뜨거뜨거 'AI 시대의 인간'에 대해 다루는 것 같다. 출간과 함께 내한해 여러 대담에 참여하는 모습을 봤다. 짧은 클립 영상 속에서도 그는 AI가 바꿀 무시무시한 사회를 단적으로 제시하는 걸 봤다. 예를 들면 AI가 로봇이 아닌 체를 하면서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는데 구글이 고안한 reCAPCHA라는 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장치를 제시할 경우, 현재의 AI는 리쿠르팅 사이트에 '사람을 고용해서' 이 부분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만 놀랍나?


그림책이 하나 나올 때 됐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작은 사람>이다. 고망이랑 간 손기정 어린이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림책인데, 나로선 좀 충격적이었다. 존이라는 아이의 방, 그의 눈앞에 벌거벗고 더러운 작은 어른 남자가 등장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그는 모험으로 데려갈 요정이나 소인국 사람도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희한하고 흥미진진했지만 고망이 때문에 더 읽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 사회를 풍자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닌가 싶다. 가디언지에서는 "초현실적인, 생각을 바꿔주는 걸작"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기대된다.

작은사람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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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담은 것은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인데, 한국과학문학 대상 작품이다. 이것은 연골이 닳아서 다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경주마 투데이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가난과 장애에 세상살이가 힘든 청소년 연재 가족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창작가무극에 이어 워너브라더스에 영화화 판권도 팔려 궁금한 작품. 골수 SF 소설 팬들은 SF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너무 뻔한 설정,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기도 하다.(브레이드러너랄지 스필버그의 AI 시절에 이미 나온?)


점점 뭔가를 읽는 것이 힘든 시기가 도래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능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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