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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카세에 대하여

스시 오마카세 라이프 10년차

by 펑예

일본어 마카세루(任せる; 맡기다)에 존칭 접두어인 '오'가 더해져 탄생한 오마카세(お任せ)는 이제 명실상부 파인다이닝의 대표적인 식문화가 되었다.


스시가 메인인 스시 오마카세를 시작으로 가이세키 오마카세, 덴뿌라 오마카세, 한식/한우 오마카세 등 다양한 종목으로 확장되어 갔고, 흑백요리사를 통해 스타 셰프로 올라선 이모카세라든지 우리 동네 식당가에도 있는 '삼촌카세' '한식 오마카세'를 보면 파인다이닝뿐 아니라 대중식당에서도 '그날그날 셰프가 고른 선별된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라는 의미로 다양하게 차용되고 있는 것 같다.


오마카세를 단어 그대로 보자면 '셰프에게 맡기는 음식'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요체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어 내기에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셰프와의 소통과 손님에 대한 지극한 접객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에 끝나지 않고 최상의 만족감을 경험하게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스시 오마카세의 경우 바(bar)로 된 좌석에 앉아 셰프가 즉석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그와 이야기 나누고 심지어 술까지 나누어 마시며 식사하는 것을 정수로 여긴다. 일본 본토에서는 술을 못하면 셰프가 될 수 없다는 말도 있단다.


J를 처음 만나면서 알게 되었으니 햇수로 10년째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관여했는데 알면 알수록 지랄 맞고 매력적인 필드다. 셰프 배우자 입장에서는 일단 최악이다. 남편이 워라밸이 없으니 말이다. 런치, 디너 두 타임 식사만 치러내면 되지만 물밑 작업 시간이 엄청나다. 매일은 아니지만 새벽에 시장 가야 할 일도 많고 재료 손질, 음식 준비도 오래 걸리는 것들뿐이다. 그렇다고 퇴근 시간이 이른가? 술을 많이 마시는 손님들이 오신 경우 디너는 폐장 시간이 끝도 없이 길어진다. 게다가 본인까지 술을 함께 한다면? 언제 어떻게 쉬지?


가게를 오픈하며 오너가 되고는 상황은 더 하드코어. 코로나가 세계를 잠식했던 팬데믹 시기였지만 파인레스토랑, 특히 스시 오마카세들은 호황을 맞았다. 해외여행 금지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고 그즈음 돈 모아 두면 뭐 해? 욜로욜로하는 마인드라든지 그렇게라도 우울함을 달래고자 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8인 이하의 소수 인원만 드나드는 곳이라는 것도 어필했을 것이다.

장사는 의외로 잘 돼서 기뻤지만 인력난에 시달려 고생한 시기도 길었다. 나는 물론 어머니들에 동생, 이모까지 지원군으로 뛰어들었다.(그러고 보니 지원군들은 역시 여성들) 그때 생각했다. 마치 백조 같다고. 손님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양 외양을 가꾸고 우아하게 굴었지만 주방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죽기 살기로 물갈퀴를 휘저으며 고군분투.


뭐 이런 직업이 다 있을까. 다른 셰프들처럼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손님들이 착석하면 쇼가 시작되는 것이다.(실제로 쇼를 하는 셰프들도 있음)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선보이고 칼질을 하고 플레이팅을 해서 서브를 하고. 그 와중에 더듬이를 곤두세워 손님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케어를 지휘해야 한다.

알러지가 있거나 불호의 음식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 재료에 대한 소개와 손님들의 궁금증에 답한다. 손님들의 성향에 맞춰 조용히 식사만 하실 수 있게 돕거나 술을 함께하거나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음식이나 술이 나오는 속도, 왼손잡이에 맞는 배치라든지 물의 온도가 적정한지도 신경써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 식당 괜찮더라. 맛있다"라는 총평에 포함된다.


파인레스토랑이란 것 자체가 친절하고 세심한 접객을 포함하겠지만 셰프가 눈앞에서 매번 지휘하면서 이끄는 것은 독특한 일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극강의 케어이고 해산물 내지 스시를 좋아하는 입장이라면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경험이 또 없다.

최근에 디너 예약 손님이 두 분 부부밖에 없었던 날이 있었다. 2인이 대관한 셈이니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옆 손님 눈치볼 필요도 없고 셰프 포함 네 사람이 집중 케어에 들어가니까. 역시나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며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날 식사는 미슐랭 스타급에서 먹는다 한들 느낄 수 없는 만족도였다고 생각된다. TV 드라마의 재벌들 식사를 생각해보면 셰프가 나와서 요리 설명하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요구를 받아서 개선해서 내오고 뒤에는 식사하는 내내 집사들이 시중들고 있지 않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손님 뒤에 서서 지켜보며 '얼마나 호화스러운 기분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시 오마카세의 거품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런 독특한 문화 때문인지 팬덤은 공고하다. 다소 낯설기도 한 일본의 여러 재료와 요리를 맛보는 재미, 심플하면서도 굉장히 직관적인, 스시라는 음식이 주는 매력과 여러 종류의 술과 페어링이 가능하다는 점 등등으로 이야깃거리도 한가득이다.

물론 셰프도 팬들이 따른다. 이것이 단골인 셈이고 4차 산업 광풍에서 자영업의 경쟁력은 단골손님이라고 했으니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큰돈을 주고 로봇이 쥐어주는 스시를 먹고 싶을 것 같진 않고 더군다나 로봇이 같이 술을 마셔가며 그 내밀한 접객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좀 미쳐야 할 수 있는 일인 건 분명하다.


J는 오노 지로라는 일본의 유명 셰프가 70대에도 스시를 쥐는 걸 보고는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며 결혼 전 내게 그 점을 어필했지만 실상을 알고 보니 그는 가업을 이어받을 아들을 포함 여러 명의 제자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고 우리는 70대까지 수명이 이어지기나 할 것인지를 걱정해야 했다. 아슬아슬한 백조놀음에 수명을 빼앗긴다 생각돼도 아직은 여전히 스시가 좋고 고망이랑 얼른 스시 먹으러 다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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