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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넥서스

<넥서스> 읽기1

by 펑예

과거 내 독서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그저 '정독'이었던 것 같다. 한 자라도 대충 훑어버리면 밥풀 남기는 것처럼 복 나간다는 듯이 꼭꼭 씹듯 읽었다. 당연히 매번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 권을 읽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읽기 시작 전엔 부담감이 엄습하곤 했다. 어쨌거나 열심히 읽었으니 그 나름의 장점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빠르게 읽고 다독하는 것이 쿨해보이긴 했다. 그렇게 독서하는 타입들은 임기응변에 능하고 말도 잘하는 경향이 있어서 책에 대해 대화를 하다 보면 좀 주눅 드는 일도 많았다. 한마디로 스스로가 좀 "짜쳐" 보였다.


나이가 들고 책에 대한 엄숙주의, 허례허식 같은 것이 많이 사라지다 보니 이제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읽는 중이다. 장르물 소설 같은 경우는 단번에 빨리, 문학 류는 조금씩 천천히, 정보 얻으려고 보는 류는 필요한 부분만 정독하는 이른바 발췌독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 구입한 책 중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는 좀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독서노트 쓰며 읽기. 사고력과 기억력이란 것을 위하여. 읽은 만큼 조금씩 여기에 써나가 보겠다.


1. 제목

넥서스(NEXUS); 사전적 의미로는 상호 연결.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정보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핵심 키워드다.

정보 네트워크가 인류사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조망하고, AI시대가 도래한 현재와 미래의 위협을 살펴보고 과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논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유발 하라리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호모데우스>를 썼고 현재 캐임브리지 대학교 실존위기연구센터에서 '과학과 기술이 불러일으킨 윤리적인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는데 본 책은 이 연구의 결과물 중 하나가 아닐까 예상된다.


3. 프롤로그

564쪽(색인 제외)에 이르는 긴 여행에 대한 지도가 될 테니 되도록 정독한다. '아 이런 이야기를 쓰려는구나'를 파악해 혹시 중도 포기할 책이 아닐지도 짐작해본다.


우리 종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이름에 얼마나 걸맞은 존재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우리는 생태적 붕괴 직전에 있는데, 이는 우리가 가진 힘을 오용한 탓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데 이런 기술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우리를 노예로 만들거나 전멸시킬지도 모른다.


첫 페이지부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위기 상황을 꺼낸다. 그리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교만한 인간을 그린 우화들을 나열한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훗날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졌는데 나도 과거에 봤던 기억이 있다. 늙은 마법사가 제자에게 작업장을 맡기며 강에서 물을 길어 오는 일을 시키는데 제자는 꼼수를 부려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자기 대신 물을 길어 오게 한다. 하지만 빗자루를 멈추는 법은 몰라 작업장을 물바다로 만들고 결국 마법사에게 도움을 간청한다.



신화, 우화 등의 많은 이야기에서 인간의 탐욕과 우매함을 경고하고 있지만 왜 위기는 계속되는가. 이제 핵심 논지가 나온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라리 작가가 아주 친절하게 그렇게 써놨다.

예를 들어 1933년에 독일인 대부분은 사이코 패스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히틀러에게 투표했을까?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불러내는 인간의 경향은 개인 심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대규모로 협력하는 우리 종의 독특한 특징에서 비롯한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인간은 대규모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막대한 힘을 얻지만 바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그 방식 때문에 애초에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문제는 네크워크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정보 문제. 따지고 보면 나치즘, 스탈린주의는 허구, 환상, 집단 망상을 꾸며내고 퍼 나르는 방법으로 사회 구성원을 묶고 질서를 유지했다. 조지 오웰이 남긴 유명한 말처럼 "무지가 힘이 된 것"이다.


어째 슬슬 기시감이 든다. 그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 특히 그렇다.


망상에 기반한 네트워크는 필패한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많아질 경우 자정 작용이 일어나리라고 믿고 AI가 바꿔놓을 장밋빛 미래를 논하는 기업과 정부가 많다는 것을 우려한다. 그렇다면 AI의 위협은 어떻게 그려질 수 있나? SF영화 속 로봇들의 대반란 같은 이미지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그리는 비극적 시나리오는 이 두 가지다.

1. AI로 인한 새로운 세계 갈등과 AI 군비 경쟁으로 점점 더 파괴적인 무기가 생산되는 것. 2. 우리가 어디에 살든 불가해한 알고리즘으로 짜인 거미줄 속에 갇히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빅 브라더가 인간 독재자가 아니라 비인간 지능일 것이라는 점.


AI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기술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 AI는 도구가 아니고 행위자다.


그 이후에는 세계의 정세. 트럼프가 재임하고 요동치는 미국의 모습을 예로 들며 극단적인 포퓰리즘(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진실'을 가지고 그것을 경쟁자를 항복시키기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고 가정)에 대해 분석한다.

선거도 법도 다 믿을 게 못된다며 이들은 직접 연구한 것을 믿으라고 주장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러니 그들이 동원하는 또 다른 방법이 신비주의 의존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강력한 정치인을 국민과 신비로운 유대로 묶인 존재로 묘사한다.(우리나라 이야긴 줄? 그래서 그 부대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트럼프를 찬양하는 건가.)


하여간 이 책은 정보 네트워크가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놓았고 이제는 그 형태가 비유기적 정보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으며(AI시대에서 네트워크화될 위협적 정보를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이 어떤 가능성과 위협이 될지를 냉정히 파악하고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이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좋든 나쁘든 실리콘칩은 탄소 기반 뉴런의 유기적 화학적 한계에서 대체로 자유롭다. 잠을 자지 않는 스파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금융업자, 영원히 죽지 않는 독재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사회, 경제,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 그리고 우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단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고리를 잡으려 한다. 정보란 정확히 무엇인지를 찾아서.



4. 정보란 무엇인가


일상용법에서 정보는 말이나 글처럼 인간이 만든 기호와 관련 있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 것이 '셰를 아미와 잃어버린 대대' 이야기다. 세계 대전 때 한 부대를 구한 메신저 비둘기. 때론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는 것이 종이 위의 기호인 정보다. 하지만 정보는 정의하기 좀 모호하다. 점성술사에게 별자리는 중요한 정보지만 일반인에겐 단순한 게시판일 뿐인 것처럼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사물이든 적절한 맥락이 갖춰지면 정보가 될 수 있다. 이때 여기서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나온다.


진실이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정보의 대부분은 현실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며 정보를 정의하는 기준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는 것. 인간 사회는 물론 다른 생물 시스템에서도 정보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작가의 장점인 흥미로운 비유가 등장한다. 바로 <과학의 정확성에 관하여>라는 보르헤스의 단편이다. 이 소설은 가상의 고대 제국이 제국 영토를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는 지도를 만들려고 집착하다가 1대 1 축적 지도를 만들기에 이르고 이 사업으로 너무 많은 자원을 낭비한 나머지 제국이 멸망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지도는 그야말로 이불처럼 국가를 덮을 정도였는데 제국 멸망 후 지도도 해체되기 시작, "지도의 찢어진 조각들만이 서쪽 사막에 남아 이따금 짐승이나 거지에게 쉼터를 제공한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요지는, 현실을 최대한 사실 그대로 기술해도 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진실은 1대 1 비율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특정 측면을 알리고 다른 측면은 어쩔 수 없이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이며, 따라서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무언가다. 예를 들면 <성경>은 인간의 기원, 이주, 전염병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사람들을 연결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더 나아가 '메타버스'는 정보만으로 세계를 만들고 사람들을 연결시킨다. 수십 년 내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 가상현실에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외딴 사막에만 오래된 현실의 낡은 조각들이 남아 이따금 짐승이나 거지에게 쉼터를 제공할 것이다.(수미쌍관적 위트 있는 서술 너무 좋다!)


그러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정보를 현실의 정확한 지도로 바꿔서가 아니라 정보를 활용하여 많은 개인을 연결하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서라고 한다. 부족,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체제가 당연하다는 듯 유지되는 것이 한편으로 놀랍고 괴이한 일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음 노트에서는 인간이 만든 최초의 정보 기술인 '이야기'를 읽고 작성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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