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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넥서스2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 - 이야기에서 문서

by 펑예

흥미진진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두 번째 독서 노트!

정보 네트워크의 시작이 된 '이야기'와 두 번째 도구 '문서' 파트(124쪽까지)에 대해 기록하겠다.


2. 이야기: 무한한 연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로워서가 아니다.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무리들끼리 협력하는 전례 없는 능력을 보이기 시작. 다른 무리들과 무역하고 예술이 출현했으며 인류의 고향 아프리카에서 지구 전체로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한 데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사피엔스 무리들 사이의 협력이 가능해진 것은 허구적 이야기를 말하고, 믿고, 그런 이야기에 깊이 감동받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14억의 서로 알지도 못하는 신도를 연결하는 <성경>, 14억 국민을 연결하는 중국의 <공산주의 이념>이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일종의 브랜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한 개인과도 연결 가능하고 특히 지도자일 경우는 파급 효과도 크다. 예수의 경우, 실제로는 소규모 추종자를 모은 전형적인 유대인 설교자였으나 사후에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브랜딩 작업 대상이 된다. 실제 모습은 밝혀진 바 없지만 우리는 예수의 모습을 바로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예수 이야기가 고의적인 거짓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 성 아우그스티누스 같은 사람들은 작정하고 누군가를 속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절실한 바람과 감정을 예수라는 인물에게 투영했을 뿐이다."


이렇듯 역사의 빅스토리들은 대부분 감정 투사와 희망적 사고의 산물이었던 까닭에 수억 명의 마음을 흔들었고 성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예수 이야기를 단지 들어보는 것을 넘어 믿게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된다.

"현대의 수많은 연구가 보여주듯이 가짜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하다 보면 결국에는 진짜 기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상호주관적 현실"


이야기 이전에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존재하는 객관적 현실과 저 밖이 아닌 이 안에 존재해 우리가 인지하는 '주관적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세 번째 차원의 현실인 '상호주관적 현실'을 창조했다.

바로 법이나 신, 국가나 기업, 화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곳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생기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히틀러가 1933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 위기 때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나치 이야기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인이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고 특권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기보다 비극적인 실수였다. 12년간의 나치 통치는 독일인들의 물질적 이익에 전혀 도움 되지 않았으므로.


"역사의 경로는 결정론적인 권력관계보다는 매력적이지만 유해한 이야기를 믿는 데서 비롯되는 비극적인 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것은 허구적인 이야기, 객관적 진실이 아닌 상호주관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데 허구는 진실에 비해 두 가지 고유한 이점이 있다.


첫째는 허구는 간단하지만 진실은 복잡하다.

둘째는 진실은 고통스럽고 불편한데 그렇다고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만들면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된다.


허구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실을 완전히 외면하는 허구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모든 정치인과 법과 권력이 거짓말이라거나 사기라는 건 아니다. 허구적 이야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상호주관적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은 아니다.


미국 헌법의 경우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속이지 않았다. 그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매우 창조적인 법적 허구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합의를 통해 그것을 개정하고 불의를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하여 노예제, 여성의 종속적 지위, 경제적 불평등을 만드는 법안이 이후에 폐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솔직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사회 질서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인정하면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기 힘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는 승리의 진군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질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3. 문서: 종이 호랑이의 위협


제대로 기능하는 민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라는 정서를 끓어오르게 하는 이야기만 가지고 충분할까?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해도 하수도를 파야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갖가지 설비를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한 세금도 걷어들여야 한다.

"따지고 보면 애국심의 본질은 조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시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며, 외국과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오히려 나와는 생각이 다른 국가 구성원들도 하수도뿐 아니라 안보, 교육, 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이 모든 서비스를 관리하고 거기에 필요한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 처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목록'이 필요한 것이다.


목록과 이야기는 상보적이다. 민족 신화는 세금을 정당화하지만 세금 기록은 꿈과 희망을 학교나 병원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목록은 이처럼 중요한 도구지만 성경이나 신화와 달리 우리 뇌에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는 복잡한 플롯의 드라마는 기꺼이 이해해도 이달의 세금 고지서를 암기할 의향은 없다. 그러므로 탄생한 기술이 바로 '문서'다.


인간은 뇌가 기억할 수 없는 상호주관적 현실은 만들 수 없었지만 문서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힘은 따지고 보면 점토판과 종이가 가진 힘의 연장이다."


문서는 특정 유형의 정보를 인간의 뇌보다 훨씬 잘 기록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 바로 '검색'이었다. 문서는 유기체가 아니라 생물학 법칙을 따르지 않으며 진화에 의해 질서 있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세금 신고서는 세금 신고서 선반에서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선반에 가져다 놓는 게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정보를 선반별로 분류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한다.

여기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관료제"다.


대규모 조직을 만드는 지도자가 검색 문제를 해결하여 더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이 관료제였던 것이다! 이 파트는 현재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 부조리, 갈등을 야기하는 관료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특히 흥미로웠다.

관료제 질서의 중심에는 '서랍'이 있다. 일단 비유가 참 찰떡이다. 관료들은 여러 개의 임의의 서랍(인위적 질서)을 만들고 그 속에 세상을 구겨 넣는다. 그것은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개개인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한 인간의 행위를 '범법' 서랍에 넣을지 '합법' 서랍에 넣을지에 대한 결정은 그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게 할 수도 있다. 다음 문장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관료 조직이 당신에게 특정 꼬리표를 붙이면 그 꼬리표가 순전히 관례에 불과할지라도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그 관료가 인간 전문가든, 아예 유기체 아닌 AI든 마찬가지다."


문서가 많은 사회적 사슬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면서 문서에 상당한 힘이 부여되었고 문서의 난해한 논리를 다루는 전문가들(행정가, 변호사, 회계사)은 새로운 권력층으로 떠올랐다.


여기서 관료제의 악몽을 그리는 흥미로운 예시들이 제시된다.

은행원 K가 어느 날 체포되고 끝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스토리를 담은 카프카의 소설 <소송>과 전 세계에서 관계자 외에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상품이 최종 빌런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빅쇼트>는 꼭 보고 싶다. 그리고 작가 본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제시하는데, 1930년대 말 루마니아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 차지한 땅에 살던 할아버지는 토박이임에도 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서류 하나가 없어 생사의 위협을 받으며 갖은 고초를 겪다 영국군에 입대해 또 생사를 가르는 전쟁을 치르고야 그 '서류'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류 보관은 우리 가족에게 신성한 의무가 되었다."


그렇다고 관료제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일상을 영위하고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는 어떻게 네트워크를 설계하냐다. 진실과 질서의 균형을 찾으려는 과정 속에서.


다음 장은 어떤 오류도 없다고 가정하는 정보 네트워크의 위험성을 이야기할 것으로 보이는데 부디 내가 성실하게 독서노트를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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