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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몹시 위험하게

<소년의 시간>과 엮어서

by 펑예

지난 토요일엔 학부모를 대상으로 좋은 강의가 있다며 강의를 듣는 동안엔 고망이를 봐준다고까지 하셔서 어린이집에 들렀다.

강의 제목은 '디지털 양성 평등'. 아직 학교도 안 간 유딩 부모다 보니 미디어 노출을 적절히 제한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미디어 상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성불평등적 시각과 폭력, 심각하게는 범죄 노출에 대한 위험은 아직은 먼 얘기 아닌가... 하는데 갑자기, 몇 달 전에 본 영국 드라마가 생각났다.


제목은 <소년의 시간>. 스포가 좀 있겠습니다.

평온한 밤, 한 가정집에 테러범, 흉악범이라도 잡겠다는 듯 경찰들이 총을 들이대며 들이닥친다. 1층에 있던 아빠와 엄마는 물론 화장실에 있던 누나까지 손 들어, 엎드려시키고 최종 목표물인 아들을 덮친다. 겁을 잔뜩 먹고 오줌까지 지린 그 소년은 고작 열세 살. 아빠의 외침처럼 이 경찰들이 '뭔가 잘못 알고' 그러는 것만 같다.

사전 정보 없이 본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공권력의 부조리함에 희생당하는 어린 영혼? 누명 쓴 소년과 그 가족의 고군분투? 하지만 어째 독하고 싸한 면이 있는 영국 드라마답게 나로선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첫 장면이 주는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다.


경찰서로 소년은 이송되고 보호자로 그의 아버지가 따라나선다. 혹시 네가 그런 거 맞냐고 괜찮으니까 솔직히 다 말하라는 아버지에게 소년은 그 아버지가 잘 아는 얼굴로 "내가 안 했어."라고 한다. 저 눈으로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래 맞겠지. 얘가 그런 게 아니야, 함정에 빠진 거야. 하지만 경찰은 우리가 괜히 문을 부수고 총을 들이대는 법은 없다는 듯 그의 아버지에게 CCTV를 보여준다.

영상 속에는 아들이 한 소녀를 따라다니다 주차장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마지막엔 소녀를 여러 차례 칼로 찌르는 장면이 나온다. 딥페이크 이야기 아냐, 혹시? 내 의심과 달리 아버지는 빼박 증거 앞에서 그저 오열하고 만다. 아버지한테 매달리는 아들의 모습이 이제는 의심이 좀 간다. 억울하다는 투가 아니다. 그저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열세 살이? 얼굴도 잘 생기고 제법 영리해봬는 쟤가 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다음 장면들이 이어진다. 우선 담당 형사가 해당 학교를 찾는다. 사실 자신의 아들도 다니는 곳이다. 그 아들의 시점으로 몇 장면이 흘러간다. 동급생들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다. 그리고 형사의 시점,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희생자의 친구를 만나고 가해자의 친구도 만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학교 전반의 모습. 학교라고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한마디로 완전히 미쳤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대놓고 무시하고 선생님도 애정이라곤 없다. 심지어 TV로 영상 자료를 틀어주고 나가버리기도 한다. 여기가 무슨 문제아 학교인가? 파트너 여 형사가 그런다. 학교 하면 시궁창 냄새가 난다고. 어쩌면 영국의 학교들이 이 지경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극화해서 표현했을 수도 있겠으나.

결국 아이들이 악마 같은 모습이 된 건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 때문이다. 아들의 진짜 생활을 알게 된 형사는 미안한 마음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러 가자고 권한다. 그리고 아들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있었던 일과 인스타그램에 남겨진 은어의 의미였다.


다음 장면은 시간이 며칠은 흐른 후의 보호 감호소고 소년의 담당 심리상담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 장면을 다 보고 나면 왜 심리상담사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좀 알 것 같다. 이 여성 상담가가 아주 진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그 몇 시간이 얼마나 혹독한지 모른다.

소년은 더 이상 측은함을 불러일으키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쩌면 좋아했던 친구를 칼로 몇 차례나 찌를 만도 한 괴물이다. 상담가에게 내지르는 괴성 속에는 모든 것- 자존감, 성적 자의식,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왜곡되고 뒤틀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담가가 위협을 느끼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그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 두려워 "나는 그 애를 추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라고 변명을 해댄다. 결국 그녀는 소년이 나간 후 인류애를 잃은 얼굴로 눈물을 훔치며 소년이 한입 먹고 나간 샌드위치를 치우다 구역질을 느낀다.


마지막 장면은 가족들, 특히 아버지의 시점이다. 아들의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그는 생일을 맞았다. 마음씨 좋은 와이프와 딸은 본인들도 힘들지만 그가 좋아하는 가정식을 준비해 그의 기분을 다독이려 한다. 그들은 애써 힘을 내보려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두질 않는다. 그의 가게 로고가 쓰인 승합차에 어떤 호로자식이 '강간범'이라고 라커로 써놓은 것이다. 외식하려던 계획도 다 관두고 엉망이 되어 돌아온 그는 아들을 생각하며 "내가 뭘 잘못했을까? 집에 조용히 있으면 안전할 줄 알았어" 하며 오열한다. 일하느라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지 못해서? 컴퓨터를 사달래서 사줬고 그것을 새벽까지 하는 모습도 봤지만 크게 제한하지 않았는데 그게 잘못이었을까?


문제아가 나올 만한 문제 있는 가정이 아니었다. 제법 화목한 가정이었고 부부 사이도 돈독했다. 우리가 알던 지식으로는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왜 소년은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 드라마는 그런 질문을 하고 있다.

어쩌면 바깥세상의 범죄와 폭력만큼, 혹은 그보다 더할지도 모르는 인터넷 세계의 조용한 위해함을 생각해본다.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 역시 그런 맥락의 책인데, 바깥세상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 드는 보호자들이 미디어의 노출은 마음껏 방치하는 세태로 인해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병들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래서 미국, 유럽 등에서는 10대의 SNS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도 통과되었단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뻑킹 인스타그램. 알면 알 수록 유해하기만 한 세계! 그러면서 한 번씩 멍하니 바라보고 J는 수시로 멍하니 보고 있다. 단톡방? 계집신조? 미친... 에그, 그만 다 폭파해 버렸으면.





*원제는 청소년기를 뜻하는 ADOLESCENCE. 제목이 아쉽다 생각했는데 원제보다는 훨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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