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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Mar 15. 2023

더 글로리

동은이 연진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1. 

더 글로리의 기본 서사구조는 복수극이다. 어릴 때 봤던 알렉산더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연상되었다. 흡인력이 너무 뛰어나서 다음날 진료가 있음에도 새벽 세시까지 몇 편을 보고 다음날 완결을 지었다. 사이다가 너무 넘쳐나서 약간의 긴장감이 줄긴 했지만,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조나 인물의 성격의 일관성을 보고 경이로운 생각까지 들었다. 


2. 

실제 임상에서 피해자를 거의 매일 만난다. 작은 따돌림에서 적극적인 괴롭힘까지 특히 젊은 친구들은 거의 괴롭힘을 받았다. 심지어는 친한 사람들에게 힘든 얘기를 했다고 자신을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을 했다고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보면 괴롭힘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 같다. 드라마에서처럼 복수를 하진 못한다. 그런데 비슷하게 복수하는 상상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상상을 한다. 끝없이 반복되지만 끝나지 않는 드라마이다. 


3. 

실제로 피해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체적인 상처도 괴롭다. 하지만 그 후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들의 시선, 

가해자들의 말, 

가해자들의 행동과 그 이유('너한텐 이렇게 해도 되니까 하는 거야'라는 끔찍한 이유다.)가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정해준다. 


4. 

그리고 피해는 감정 중추에 새겨진다. 

감정 중추에 새겨지는 것은 바위에 새기는 것 같다. 

나중에 주변에서 위로해 주는 말은 모래나 기껏해야 진흙에 새기는 것이다. 

모래는 파도가 한번 휩쓸고 가면 그대로 사라지고

진흙에 새겨지면 그나마 큰 비가 오지 않은한 흔적이라도 남는다. 

하지만 삶이 달라지려면 바위에 새겨진, 정서 중추에 새겨진 그 흔적을 지워야 한다. 


5. 

회복은 그 반대의 과정이다. 


가해자들의 시선과 말을 걷어 내야 한다. 

때로 가까운 사람들이 2차 가해('너도 뭔가 원인제공했으니까, 걔들이 그랬겠지')는 더 끈질길 수 있다. 


그 말을 걷어내고,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시선과 말을 걷어내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6. 

동은이 연진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복수의 결과는 가해자로부터의 자유이다. 


7. 

좋은 작품이라, 

피해자들이 소모되는 듯한 느낌이 들 위험성은 더 높아 보인다. 

좋은 작품이라, 

그런 영향 주지 않았으면 한다. 


'연진아, ~' 

라고 하는 소리 정말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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