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래야 하루가 시작되니까.
잠귀가 밝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불면증 까진 아니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암막커튼은 필수품이다. 캄캄한 작은 공간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이보다 더 아늑한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아늑함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게 조금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내 하루의 시작은 이 어두컴컴함을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운한 아침은 어떤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찌뿌둥하다. 알람을 맞추긴 하지만 소용없다. 왜 매번 알람보다 먼저 깨는 건지. 그 얼마 안 되는 잠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데 도대체 왜 푹 잠들지 못하는 걸까.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지도 잊은 지 오래다. 덕분에 오늘 아침도 이불속에서 조금 미적거려 본다. 그런다고 다시 잠들지도 못할 거면서.
애꿎은 휴대폰만 뒤적인다. 그리 급하게 답장해야 할 연락도 없으면서 오늘도 제대로 못 잔 짜증을 이렇게 늑장 부리는 걸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의미 없는 알람이 울렸지만 모른 채 좀 더 이불속을 파고들어 본다. 물론 이 늑장의 책임은 10분 후부터 다급하게 움직일 내가 져야겠지만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5분이 지나고, 8분이 지나고. 더 지체할 수 없어져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긴 했지만 그저 일어나 앉았을 뿐이다.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또 시간을 보내다 팔을 뻗어 커튼을 걷어내 본다. 암막 커튼의 효능에 절로 감탄할 만큼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하늘도 파랗고 선명한걸 보니 오늘은 공기도 꽤 좋은가보다. 피곤함을 핑계로 댓 발 나왔던 입이 조금 들어가고 부스스한 눈이 조금씩 떠진다. 시간이 충분하진 않지만 잠시 창밖을 내다보다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고 창문을 열어본다.
하루를 시작하는 내 습관 같은 거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것. 날이 아무리 추워도 빼놓지 않는다. 오히려 추운 겨울이 환기할 맛이 난다. 차가운 공기가 작은 공간을 헤집는 느낌이 참 좋다. 공기가 한 번 바뀌는 그 새로움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너무나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구석구석 찬바람이 휩쓸고 다닐 때 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청소기를 돌리는 것. 환기를 시키며 청소기를 돌리는 건 평일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꼭 해야 하는 아침일과 중 하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습관은 우리 가족 모두가 갖고 있다. 깔끔한 엄마를 둔 덕에 우리 가족은 누군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누군가는 청소기를 돌린다. 어렸을 때엔 주말의 늦잠이 이 사소한 일과 하나 때문에 온전히 보장받지 못해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도 절로 몸을 움직인다.
마음만큼이나 엉망인 이 공간에서도 이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되지 않는 내 습관 중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드는 이 습관만큼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