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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Dec 25. 2022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래야 하루가 시작되니까.

잠귀가 밝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불면증 까진 아니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암막커튼은 필수품다. 캄캄한 작은 공간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이보다 더 아늑한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아늑함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게 조금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내 하루의 시작은 이 어두컴컴함을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운한 아침은 어떤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찌뿌둥하다. 알람을 맞추긴 하지만 소용없다. 왜 매번 알람보다 먼저 깨는 건지. 그 얼마 안 되는 잠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데 도대체 왜 푹 잠들지 못하는 걸까.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지도 잊은 지 오래다. 덕분에 오늘 아침도 이불속에서 조금 미적거려 본다. 그런다고 다시 잠들지도 못할 거면서.


애꿎은 휴대폰만 뒤적인다. 그리 급하게 답장해야 할 연락도 없으면서 오늘도 제대로 못 잔 짜증을 이렇게 늑장 부리는 걸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의미 없는 알람이 울렸지만 모른 채 좀 더 이불속을 파고들어 본다. 물론 이 늑장의 책임은 10분 후부터 다급하게 움직일 내가 져야겠지만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5분이 지나고, 8분이 지나고. 더 지체할 수 없어져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긴 했지만 그저 일어나 앉았을 뿐이다.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또 시간을 보내다 팔을 뻗어 커튼을 걷어내 본다. 암막 커튼의 효능에 절로 감탄할 만큼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하늘도 파랗고 선명한걸 보니 오늘은 공기도 꽤 좋은가보다. 피곤함을 핑계로 댓 발 나왔던 입이 조금 들어가고 부스스한 눈이 조금씩 떠진다. 시간이 충분하진 않지만 잠시 창밖을 내다보다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고 창문을 열어본다.


하루를 시작하는 내 습관 같은 거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것. 날이 아무리 추워도 빼놓지 않는다. 오히려 추운 겨울이 환기할 맛이 난다. 차가운 공기가 작은 공간을 헤집는 느낌이 참 좋다. 공기가 한 번 바뀌는 그 새로움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너무나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구석구석 찬바람이 휩쓸고 다닐 때 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청소기를 돌리는 것. 환기를 시키며 청소기를 돌리는 건 평일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꼭 해야 하는 아침일과 중 하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습관은 우리 가족 모두가 갖고 있다. 깔끔한 엄마를 둔 덕에 우리 가족은 누군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누군가는 청소기를 돌린다. 어렸을 때엔 주말의 늦잠이 이 사소한 일과 하나 때문에 온전히 보장받지 못해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도 절로 몸 움직인다.


마음만큼이나 엉망인 이 공간에서도 이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되지 않는 내 습관 중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드는 이 습관만큼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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