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드려 맞을 각오 하고 쓰는 채권의 세계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돈이 없어서 갚지를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은행이 돈을 떼어먹혔으니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만약에 중간에 이자를 한번도 안내면 명목상으로 사기죄로 고소는 가능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간에 이자가 없는 어음을 주고받은 기업들이, 어음이 부도가나면 반드시 사기죄로 고발당해서 옥살이도 하고그랬습니다. 만약에 10원이라도 은행에 줬다면 사기죄는 성립하기 힘들죠. 왜그런가요? 사기죄는 처음부터 변제할 생각이 없었다는 고의성이 필요하니까요. 고의성 입증은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죠. 돈을 가지고 잠적을 했다던가, 투자를 했는데 약속했던 사업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던가 하면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겠죠. 판사님들이나 검사님들은 똑똑하니까요.
우리나라의 전세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만 존재하죠, 전세권 등기를 하는 경우는 개인간에는 거의 없고 전세권을 스스로 등기해서 가족에게 줘 보호받게 하는 경우나 법인간 등기외엔 거의 없습니다. 강력한 물권인 전세권을 집주인이 해줄 리가 없죠. 한국의 전세는 임차권입니다. 채권인데, 순수하게 채권으로만 하면 소유권 이전 등의 강력한 물권때문에 임차인이 너무 많은 피해를 본 적이 있어서 확정일자라는 선순위채권으로 인정을 해 줍니다. 원래 채권법상에는 채권자 동등원칙에 의해서 담보권자가 아닌이상 같은 위치이기 때문에, 확정일자라는 준 선순위 특별법이 없으면 임차인의 손실이 매우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랏님들이 특별히 법을 만들어 강제 한 것이 확정일자입니다. 월세 임대차가 주된 해외의경우에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장치이기도 하죠.
전세금(채무금)을 받고 집을 임차해 줬는데, 전세 만기가 도래해서 집주인은 빌린 돈을 돌려주고 임차인은 빌린 집을 반환하면 채권 채무관계가 끝나게 됩니다. 마지막에 채권자인 임차인이 채무자인 임대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집주인이 돈이 없다고 배를 째면 어떻게 될까요? 집주인이 돈이 없으면 끝납니다. 물론 가압류든 뭐든 걸 수 있죠. 임대차 채권은 당연히 소구채권 (지구끝까지 찾아가서 받아낼 수 있는 채권) 이고, 우리나라에서 비소구채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집주인이 돈이 없든 돈을 감춰뒀든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보통 범죄자들은 그럴경우 고문을 합니다. 매에 장사 없거든요. 없던돈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범죄자들이 아니니까요. 개인간 금전거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가압류하고 통장정지시키고 할 수 있으니 그걸로 압박은 가능합니다. 소위 인실좆이라는 건데, 악성 채무자 아니면 이런 짓은 안하는게 좋습니다.
그래서 채권 피해자들은 사기로 형사고발을 합니다. 형사로 압박해서 민사대금을 받기 수월하니까요. 일반적인 경우 채권일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임대차의 경우 담보물건자체가 집이고, 집주인이 '집팔아서라도 주려고 했는데 집이 안팔린다' 해버리면 끝입니다. 진심이든 아니든 말이죠. 판사님들이라도 사람의 마음은 못읽으니까요. 보통 임대차등기명령으로 소위 등기부 빨간줄긋기로 압박들을 하는데, 이것도 자금에 여유가 있는 분들이나 가능하죠. 딴데가서 일단 살아야하거든요. 그 집에서 살면서 임대차 등기명령은 할 수 없습니다. 어디든 여러모로 부자들만 권리를 찾기 좋습니다.
임대차가 사기행위가 되려면, 집을 2000채 사서 공인중개사나 다른 사람들과 모의해서 집값이 곧 떨어져 우리는 확실히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전세금을 받아 다 써버리든지 해외에 숨겨서 돈을 벌어야겠다 라는 고의성을 가지고 했어야 합니다. 입증하기가 쉬울까요. 사실 이게 입증이 되는게 더 이상한 겁니다. 왜냐면, 집값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근데 최근에 어떻게인지 입증을 해서 14년형을 선고했던데, 법리대로만 판결이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통쾌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임차인들의 피눈물과 고통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이죠. 만약에 해당 집주인이 집값의 예측을 정확히 하는 신과 같은 인물이면 유죄가 확실합니다. 임차인들을 속여서 확정일자를 못받게 했다면 당연히 유죄입니다. 그런데 그런거 같지는 않습니다.
해당 업자들은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전세금을 반환하지는 않을겁니다. 추징금도 당연히 안낼겁니다. 하지만, 법은 바뀐것이 없죠. 시간을 끌고 이슈가 잠잠해지면 판사님들이나 검사님들은 법리 주장에 힘이 빠질겁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분노를 잠재울만한 쓰레기 몇덩어리를 바쳤으니 법을 바꾸거나 할 고생은 덜하게 되겠죠. 잠깐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일은 합법적으로 여전히 얼마든지 가능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한푼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해당 가해자들은 아마 이런생각이었을겁니다. "집값오르면 내거, 떨어지면 니 꺼". 못됐죠. 근데 불법은 아닙니다. 전세라는게 원래 저러려고 하는거에요. 다른 나라들이 전세가 좋은걸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 말이 안 되는거니까 안 하는거에요.
몇년전 저금리 시절에 저는 전세를 들어갈 경우에 최소한 집주인의 직업을 물어보고 들어가라고 한 적 이 있습니다. 전세가 결코 싼 임대차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왜 전세가 싸보일까요? 숨은 채무불이행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전세시장에서 채무불이행률을 금리에 더하면, 임대차와 별로 차이가 안 납니다. 가끔 이렇게 블랙스완처럼 일어나면서 채권의 금리를 높이는 형태죠. 점프리스크라고 합니다 보통. 그런데 그 글을 쓰고도 엄청 뚜드려맞았습니다. 전세가 없으면 내집마련은 어떻게 하느냐, 임대차보다 훨씬 현금흐름이 좋은데 뭘 알고나 쓰냐. 뚜드려 패고싶으시면 패면 됩니다. 안죽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신이 아니니까, 모든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거니와 한국은 하급심 판결문 공개도 잘 안하는걸로 유명해서,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어서 피해자들을 두번죽인거라면 저를 뚜드려패세요. 그리고 후련해지시면 입법을 요구하세요. 입증되지 않는 것을 여론때문에 입증해버리고, 입증해야할 것을 재력/권력의 입김때문에 입증하지 않는 사법과, 적당히 얼르면 돌아가는 입법, 이것이 한국 법률의 현주소입니다. 얼마나 갈 것 같으세요? 게으른 대륙법만큼 나라를 빨리 골로가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소잃고 외양간고친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소라도 잃어봤으니 외양간이라도 고쳐야되는거 아니겠습니까? 늦더라도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합니다. 맨날 소만 잃으면 소고기는 언제먹나요. 집주인들만 처묵하지말고, 임차인들도 좀 먹읍시다.
IMF 이후에,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주택을 3채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려는 법을 제정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랬다면 노숙자들이 집을 2000채나 가지고 있을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집을 가진)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이제는 필요할까요 그 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