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임원이 되지 못했을까요?
나는 잘 운영되는 작은 가게의 사장과 대기업의 임원을 동급으로 보지 않는다. 대기업 임원이 가게 사장보다 저 아래 있는 사람으로 본다. 물론 실제로는 임원들이 돈도 더 잘 벌고 사회적으로 부러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여전히 작은 가게의 사장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은 급이다.
오너/창업자와 임원은 다르다. 그냥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예전에 어떤 대기업 임원이 회사 상장하면서 주식을 몇십억원어치 정도 받으면서 굉장히 울분을 토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주주나 창업자 출신 임원들한테는 주식을 엄청 줬는데, 나한테는 고작 몇십억원어치만 줬다면서. 물론 그 분도 왜 그런지 이해는 하기는 한다. 본인도 사업을 하다가 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월급쟁이 임원에 대한 대우는 창업자나 오너와는 격이 다른 것이다. 리스크를 감수했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결과는 좋은 방향이든 안좋은 방향이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대주주나 창업자의 입장에서 임원이라는 건 그냥 상급 머슴에 불과하다, CEO 정도 되면 그나마 비슷한 급으로 인식을 하기는 하지만 뭐 꼭 그렇지도 않다. 오랜기간 주식이 분산되어서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해진 미국의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나마 리스크가 낮은 직장생활에서 주어진 일을 미친듯이 열심히 하고, 사내정치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창업자와의 격차를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사장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몸이 망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면서 잡스러운 일까지 다 해서 적당히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이 리스크를 거는 것보다 훨씬 '말이 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사랑하든지 간에, 임원을 달아주는 것은 그런 삶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대주주나 창업자이다. 그게 회사가 당신을 사용하는 방법이니까.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든 회사를 얼마나 사랑하든, 회사가 당신을 임원으로 만드는 때는 '회사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 때 반드시 임원이 되어야 될 때' 이다. 당신이 그 때 반드시 임원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회사는 당신을 임원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실감에 퇴직해서 이상한 상가에 투자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공부해서 올리는 성적, 영업을 뛰어서 내는 영업 숫자 등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뭔가 남들 안하는 활동은 잘 알지도 못하고, 통제할 수도 없고, 가시적 성과가 바로 생각이 나지 않으니 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을 사는 (또는 전세계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이 판에박힌 공부를 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기대에 따라 '정답' 인 인생을 살게 되는 이유이다.
적당히 일하면 승진할 수 있는 부장이나 부서장급 직책까지는 저런 공식이 잘 들어맞는다. 그러다 임원이 되어야 할 때 난감함을 맞딱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다. 사내 정치로 길을 찾는 김낙수나, 압도적인 실적으로 길을 찾는 도진우. 그런데 정작 그들을 임원으로 만들어줄 사람들은 김낙수는 능력이 떨어져서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도진우는 그냥 그 자리에서 실적이나 쌓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인생을 살면서 남의 결정에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김낙수는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 결국 그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와 인생을 찾게 된 것이다. 김낙수가 잘못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잘못한 것도 없다. 집도 있고 대기업을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자신' 이, 세차사업을 하면서 자신을 버렸을때 비로소 보이게 된다는 것은 현대인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내가 나를 봐 줘야지, 누가 나를 봐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