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플리마켓에 참여했다. 겨울에 쉬어가고 오랜만에 참여하는 행사. 플리마켓을 하러 버스에 오르는 길에는 귀찮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막상 도착하자 손이 빨라졌다. 악세사리를 진열하고 만들어주고. 설명하고 판매하고. 확실히 마케팅은 재미있다. '팔리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재미.
바로바로 판매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만들어두고, 손님이 오면 판매로 이어나갔다. 업셀링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팬던트 추가로 업셀링을 하는데, 팬던트 하나 달지 않고 팔찌를 만들어간 사람은 이틀동안 3명뿐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야외에서 테이블 하나 펴놓고 앉아있으면, 세상 한가운데 내 테이블이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다. 그게 좋다. 시끄럽지만 고요함을 느끼고, 바쁘지만 여유를 느낀다. 돈을 벌고 있기에 쓰지 않는다. 캐리어에는 여행 짐 대신 악세사리와 잠옷 등이 한가득 들어있고 그건 꽤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이 일이 좋다.
자유로움이 좋다. 어느 한곳에 매어있지 않고 내킬 때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게 좋다. 천성적으로 일벌레라, 게으름을 피우진 않을 테니 지금의 이런 삶이 걱정되지 않는다.
평일에는 파자마 차림으로 온종일 집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주말에는 온종일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은 나에게 꼭 맞는다. 걱정되는 게 있다면, 또 여름이 지날 때 잔뜩 그을릴 나의 피부 정도? 선크림을 얼굴과 손에 자주 바르려고 노력 중이다. 플리마켓에 나가기 시작한 후로 많이 탔지만 어차피 겨울에 어느 정도 복구되니까 괜차네~
일요일에 대구에서 하루를 더 보낸 다음, 어제는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회사에 가서 오랜만에 대표님과 동료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온라인으로만 접선하다가 오프라인으로 보니 매우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서울시 전세대출을 마무리하러 이사 갈 집 근처의 은행에 들렀다. 사인을 몇 번째 하고 있을까, 생각에 잠기던 때에 끝이 났고 바로 근처 카페로 향했다. 나는 디지털노마드이니까, 노트북을 펴는 그곳이 곧 일터이니.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다가 퇴근길 지옥철을 경험하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느낀다. 이걸 매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정말정말 대단하다고. 가만히 있지만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느낌, 숨막힘. 보고 싶지 않지만 보이는 앞 사람의 핸드폰 화면. 하나의 콩나물이 되어 맥 없이 흔들리며 지하철을 견뎠다. 15분만 가면 되었지만 그 시간은 길고 길었다. 으윽, 집에서 일하는 게 짱이라니까.
다시 평일이다. 여전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고, 책상 아래에 펴놓은 담요에서는 맹수가 팔을 쭉 편 스트레칭 자세로 졸고 있다. 세탁기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제목은 모르지만 듣기 좋은 재즈음악이 퍼져 나온다. 거실 벽을 가득 채운 창문에서는 환하게 빛이 들어온다. 좋구나, 좋아.
많은 걸 욕심내지 않는다.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존경받는 명예를 갖고 싶지도 않다. 명품 가방이 탐이 나지도 않고 있어보이는 직책도 영 관심 없다. 그냥 지금처럼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편하고 예쁜 파자마 차림으로 조용하게 일하고 싶다. 식빵 굽는 맹수의 옆에서. 그리고 날 좋은 날에 파라솔 펴고 그 아래에서 날씨를 즐기고 싶다. 물론 악세사리를 판매하면서 있겠지만.
내 나이 또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건 맞지만, 이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열심히 하게 되고 많이 하게 돼서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이라고 하면... 너무 핑계 같으려나. 그렇다면, 언젠가 캠핑카 하나 열고 집시 생활을 하고 싶고, 그러려면 캠핑카가 필요하며 캠핑카는 비싸다는 말로 얼버무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