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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Jun 06. 2023

색색의 향연

디자인아트페어 2023

미술 애호가 혹은 부유층만의 장터였던 미술 경매, 아트페어 등에 대대적인 팬데믹을 지나가며 새로운 소비층이 유입되었다. 여기저기서 남용하는 단어이기는 하나, 10대부터 30대 초반을 아우른 MZ세대 말이다. 덕분에 국내 미술시장이나 옥션의 규모도 배로 성장 중이고, 아트 컬렉팅이나 아트 테크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관련 책이나 영상을 보고 듣다 보니 자연스레 '언젠가'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언젠가 나도 아트페어나 경매에 참여하고 싶다고.


다만 미술관에 찾는 것보다 이상스레 어려운 느낌이었다. 반드시 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가야 할 것 같다고나 할까. 작품을 들여오면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미술관만 해도 얼마나 철저하게 온도와 습도, 빛을 조절하던가. 마땅한 공간을 지금 내 방에서 찾긴 어려웠으므로 구입할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없었다. 아무렇게나 가져오고 싶진 않으니까. 마음에 든 만큼 정성을 다해, 가장 잘 어울릴 자리를 마련하고 싶달까.


그래서 아트페어엔 한참이나 지나서 가보겠거니 했건만.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디자인 아트페어 2023>에 방문한 덕에.





평일, 그것도 휴관일 다음날에 찾은 아트페어는 초입부터 한가했다. 관람객은 보이질 않고 매표소에 일렬로 앉은 몇몇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은근히 응대가 불퉁해서 의아함을 안고 입장했다. 양옆으로 늘어진 부스들. 이전에 박람회에서 일해본 적도 있고, 참관객으로 방문한 적도 있어서인지 가벽으로 이루어진 칸들이 낯설진 않았다. 물건들이나 먹거리 대신 미술품이 들어찼을 뿐이구나, 애써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하고.


하지만 참관객이 유난히 없던 애매한 오후에 방문해서인지 부스를 지키고 있던 분들도 아예 호객행위가 없었다.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 작가는 한 분이었고, 대부분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계시거나 상주 인원끼리의 대화에 푹 빠지셨다. 사실 선후관계를 따질 수 없다. 오는 사람이 없으니 마냥 기다리기도 지치고,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찾아오는 한 둘을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긴 쉽지 않을 테다.


페어의 활기찬 분위기를 경험하는 건 물 건너간 것 같아서 벽에 걸린 작품들에 눈길을 돌렸다. 


입구 맞은편에 있던 홍선미 작가의 작품. 묵직한 덩어리 질감을 보며 반사적으로 유화를 떠올렸는데 재료를 보니 아크릴이었다. 작품 주제는 대부분 먹거리, 그것도 휘황찬란한 색상을 지닌 음식의 단면. 어찌 보면 응어리 진 표면이 대상의 질감과 식감까지 표현해 낸 것 같다. 회화, 그것도 브러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작품을 원체 좋아하는지라 오래 살펴보았다.


아트페어에 '디자인'이 붙길래 그래픽아트나 포스터가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초장부터 그렇지 않겠거니 싶었다. 어떤 의도로 디자인을 붙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혼자 고민해 가며 나름의 답을 찾았다. 아트페어는 결국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니까, 미술관보다 훨씬 상업적인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작가 개인의 정보나 가격 등이 모두 공개되는 것도 같은 축이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일러스트풍의 그림이나 캘리그래피 등의 요소도 뒤섞이기에 미술품의 공존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당장은 미술품을 살 생각은 없긴 하지만, 부스를 쭉 돌다 보니 훗날 내가 소장하게 될 작품의 특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먼저 일반적인 회화 작품은 아무리 내 취향보다는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좀 더 소장가치가 있다. 적어도 내게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낸 건지 모를 정도의 압도감이나 나라면 절대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싶을 거다.



대표적으로 문경 작가의 작품이 그러했다. 세심한 붓터치와 초록과 노랑이 우거진 공간. 과하게 따듯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 작품 속 대상들의 눈이 마음에 든다. 둘인 듯 하나인 듯 이어지는 흰자와 콕콕 가볍게 점찍은 검은자. 앙증맞다.


수집하는 사람의 심리를 조금 알 것도 같다. 특정 물건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일전에 그런 말을 했다. 이걸 사용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매일 그 존재를 확인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그것을 자신이 가졌음을 알기에 언제나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혹은 보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좋은 것. 그게 컬렉팅의 핵심이겠다.



또 인상 깊었던 건 나선화 그림이다. 



수천 번의 나선. 반복하는 행위. 즉 과정을 담은 그림. 요즘처럼 물건이고 서비스고 비스름한 형태가 넘치는 세상에선 과정이 더더욱 중요한 것 같아 눈길을 끌었다. 한창 코로나 시기를 겪고서 명상이나 마음 수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터라 이어지는 작가의 의도에 공감 가기도 했고.



이밖에도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초청받았는데 엔리코 엠브롤리 작가의 것이 기억 남는다. 강렬한 색채만 스치듯 보았다가 입체감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난해 보였던 생김새가 보이는 그대로 툭, 튀어나와 각인된 느낌이 들었고. 회화와 설치를 오가는 경계면의 작품은 그 자체의 묘미가 있는 듯하다.



사전정보 없이 방문한 터라 아무것도 모른 채 어영부영 관람만 하다 온 기분이 들어 페어를 나서며 아쉬움이 진득이 따라왔다. 작품을 보며 궁금했던 걸 작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커다란 메리트를 누리지 못했단 점이 가장 크게, 마상열 작가의 나무 작품들이 정말 좋았는데 사진으로도 남기지 못한 것도 못지않게.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아쉬움은 이쯤에서 털어내기로 하고, 다음에 느낄 자유로운 교류를 꿈꾸며 짤막한 감상을 마무리해야겠다.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초대권을 받아 관람 후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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