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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Feb 05. 2023

남들만큼의 고원

대학, 대기업, 공무원, 남들이 선망하는 성공같은 것들을 당연하다시피 떠듬.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어도 대한민국이 커트라인을 높게 잡아놓으니까 상식적인 경쟁 이상으로 사람들이 부딪히고 그동안 쏟아부었던 시간과 돈, 마음을 생각하면 커트라인 아래의 삶을 받아들이기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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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이나 "남들만큼" 에 매우 예민하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예컨대 옷가게에서 옷을 살 때 점원이 권해준 물건을 손님이 낯설게 여기거나 어색해 하면 매우 자주 나오는 말이 "요새는 다들 그렇게 입어요", "요즘은 이런거 많이들 입어요" 다. 그 말을 들으면 손님들은 다소 안심하는 기색을 띠는 것 같다. 


내가 무슨 일을 어떠어떠하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할 때, 처음에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냥 수긍하기로 결정하시면 꼭 하시는 말이 "그래 뭐 요새는 다들 그렇게 많이 한다더라" 이다. '다들', '많이들'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자기최면을 걸듯 그렇게 읊조리는 느낌이다. 



뭔가 하고싶은 데 형편상 하지 못하는 경우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하는 말도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만!" 같은 것이다.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서 남들이 뭐 하는지 관찰하고, 자기도 따라해야 된다고 느끼는 경우도 매우 많은 것 같다. 남자들의 경우 흔히 자동차, 시계, 전자기기 쪽, 여자들의 경우 호텔 및 리조트 투숙이나 의류 및 가방 등의 잡화류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남들만큼', '남들 하는 대로', '보통', '평범' 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 


여기에 한 중요한 요소가 추가되어 그 압력이 강화되는데, 삶의 방식에 있어 옳고 그름이 대체로 명확하다는 생각, 그리고 반드시 옳은 방식으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누가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러면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무엇이 올바른지 열성적으로 옥신각신한다. 그 인민재판 같은 과정에서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판결받은 사람이 받는 사회적 지탄의 강도가 매우 강한 편이다. 물론 이런건 우리나라 사회의 좋은 점일 수도 있는데, 이 경향이 앞서 말한 '남들만큼' 이랑 결합하면 남들만큼, 남들처럼, 보통만큼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강한 압력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남들만큼, 보통", 그렇게 불리는 선이 대단히 높다. 분명 '남들만큼' 이면 해당 항목에서 평균 또는 중위값에 해당하는 정도에 근사하면 될텐데, 그게 아니라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 '남들만큼' 으로 호명된다. 상당히 높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남들만 못한, 보통보다 못한 상태로 취급되고 만다. 소득, 직업 안정성, 얼굴생김새, 키, 패션센스 등등이 대체로 다 그렇다. "남들 다 해년마다 해외여행 나가는데...", "남들 다 외식하면  한 끼에 10만원씩은 쓰는데...", "남들 다 인서울 4년제 가는데...", "남들 다 외제차 타는데...", "남들 다 프로포즈로 샤넬백에 1캐럿 다이아반지 받는데...", "남들 다 대기업 공기업 가는데...", "남들 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있는데...", "남들 다 재산 5억은 있는데...", "남들 다 남들 다..." 모든 분야에서 '남들만큼' 을 달성하기란 기적에 가끼운 일이다. 


남들만큼, 보통수준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갖게되는 박탈감, 비참한 기분은 매우 강한 것 같다. 그러면 자신이 남들만큼, 보통수준을 달성한 한두 가지의 부문에서 자존감을 최대한 뽑아내고자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흐름일 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만큼" 내지는 그 이상을 성취했다고 여기는 부문에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쟤들보다 낫다' 같은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거고, 그런 생각을 몇몇 부문에서라도 하지 않으면 자존감을 지탱할 수가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걸 사람들이 다들 알고 있으니 항상 남들이 나를 보면서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낫네'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게 될 거다. 


노력해야 이룰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무릇 사람이란 노력을 해야한다는 노력 이데올로기가 첨가되면 사람들은 제각각 본인이 보통 이상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부문에서 자신의 노력을 자찬하고자 하게 되고, 이루지 못한 이들을 노력부족으로 낙인찍고 싶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노력 이데올로기가 매끄럽게 작동하려면 경쟁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며, 이때문에 사람들은 선다식 시험 같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평가기준에 집착하게 된다. 공정한 시험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정치인들이 사수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소가 된다. 이른바 메리토크라시다. 


이택광이라는 문화평론가가 "평등의 고원" 이라는 말을 쓴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평등에 대한 논의는 이 고원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만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삶" 인 것처럼 현실적으로 논해지는 것은 대체로 중간계층 이상인 사람들의 문제, 젊은 층으로 치면 서울 내 대학이나 최소 지거국을 다니는 학생들의 생활 같은 것이고, 고원 아래의 사람들의 삶은 담론의 화자들에게 있어 당사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삶" 인 것으로 언급될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고원 아래에 있는 이들의 삶의 세계는 "체험" 하러 가야하는 다른 공간 같은 것으로 다루어 진다. 이 "삶의 현장" 이 아닌 그 외부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고, 이들이 바로 고원 위의 거주민이다. 


고원 아래와 고원 위 사이의 격차, 그리고 고원 아래의 삶은 주목받지 못하는데, 진짜 중요한 건 고원 위와 아래의 격차와 고원 아래의 삶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고위 공무원의 입시 부정을 두고 "사실 남들도 다 XX네 집처럼 하는데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 고 말하는 게 고원 위 거주민이지만, 의사나 교수 지인들 통해서 자식들한테 연구원이나 인턴 자리 턱턱 마련해 주는 이들 보다는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이 훠얼씬 많다. 그러나 고원 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사실은 없는 것처럼 취급된다. 공론장에서 고원 아래의 삶은 외면당하거나, 빈민구제라는 형태로 보살펴야 할 불쌍한 인생으로 취급될 뿐이다. 사람대접 받고 살려면 고원 위로 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나는 이 글에서 이 개념을 조금 변형해 "남들만큼의 고원" 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들만큼은 살기 위해 다들 이 고원 위에 올라서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그 각축장에서 개인이 받는 압력은 지독하게 강하다. 고원 아래의 삶을 산다는 건 미디어에서 항상 "그들의 삶" 으로 비춰 주던, 동정의 시각으로만 보아지던, 더이상 '남들만큼' 의 수준에서 '남들' 과 대등하게, 당당하게 살 수 없는, 망한 인생으로 처박힌다는 뜻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2014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된 노트 표지 


평택 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인식조사에서 나왔던 결과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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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서 미팅하는 것이 고원 위의 삶이고 공장가서 미싱 돌리는 것이 고원 아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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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직업은 고원 위 아래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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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아래로 떨어질 수는 없다는 지독한 공포와 압력 속에서 고원 위로 기어오르는 와중에도 많은 이들이 지쳐서 차라리 떨어져 죽기를 선택하고, 이미 고원 아래에 떨어진 이들 중 상당수는 비참하게 살기보다 한강물에 빠져 죽기를 택한다. 고원 위에 올라선 이들, 혹은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개 고원 아래의 사정에 대해 굉장히 냉담하게 마련이다. 자신도 "공정한 경쟁" 속에서 "노력" 을 통해 기어올라왔으니 고원 위의 혜택은 정당한 보상이며, 고원 아래의 비참은 타당한 처벌이라 여기는 것이다. 


소득이 낮거나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자살사망률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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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처절한 세상에 추가된 새로운 칼날이 "누칼협? (누가 뭐뭐 하라고 칼들고 협박했냐? 의 준말)" 인것 같다. 내가 보기엔 누칼협 자체가 하나의 칼이다. 저마다 고원 위로 기어올라가 보겠다고 나름대로 가능성 보이는 루트를 잡고 기어올랐던 것인데, 그 루트가 생각보다 나빠서, 혹은 예전과는 달라져서 불만을 가지면 들려오는 소리는 누가 그 루트 고르라고 칼들고 협박했냐는 말이다. 이 말은 그냥 찍 소리 말고 닥치라는 뜻일 뿐이다. 누가 그 루트 고르라고 칼들고 협박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들 나름대로 고심해서 고른 루트이지 않은가. "네가 선택한 뭐뭐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도 사실 같은 맥락의 말이다. 다들 제 코가 석자고, 자기도 힘드니까 남들이 힘들단 말을 하면 듣기 싫어하는 것 같다. 다들 뭔가를 힘겹게 짊어지고 있어서 주변에 누가 힘들다고 하면 너만 힘드냐고 날선 핀잔을 던지게 된다. 


이 지옥은 대체 어떻게 해야 개선될 수 있을까? 고원 아래를 지금처럼 그냥 두고 다들 고원 위로 기어오르기 위해 서로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방식으로는 절대 개선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하다고 본다. 고원을 부수고 고원을 이루던 흙을 주위로 퍼뜨려 고원이 있던 자리를 낮고 완만한 언덕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원을 만들고, 고원 위와 아래 사이의 현격한 격차를 만들어서 고원 아래 있는 이들의 삶을 존중받을 수 없는 삶으로 만들어버리고 저마다 자기 자식에게 고원 위로 기어오르라고 닥달을 하고 자기가, 또는 자기 자식이 고원 아래 사람이 될까봐 노심초사 하는 대신 모든 삶을 괜찮은 삶으로 보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답답할 뿐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책에 대해서도 얘기해 봤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냉담했다.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없고, 그렇다보니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각자 고원 위로 기어오르는 데만 몰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건 단지 한국사람들이 원래 본질적으로 사회에 기대를 안 하고 각자도생의 방법에서만 희망을 보는 성향을 갖고있어서, 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에 익숙해졌지만, 그런 나도 한국에 와서 서울을 돌아다니면 금방 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서울엔 고원 위와 아래가 공존한다. 하지만 어쩐지 고원 위의 압박이 내 주변 공기를 무겁게 채우는 느낌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할 때면 듣게되는 "대중교통 타고 오셨어요?" 나 "자차 없으세요?" 라는 말이 내 나이쯤 되면 자가용을 끌고다녀야만 한다는 압박 처럼 느껴지고, 번화가에 나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주 공들여 옷 입고 치장한 모습들이라, 독일에서 생활할 때와는 달리 나도 세련된 옷을 사입고 머리를 꾸미지 않으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친척들이나 부모님 지인의 자녀들 소식을 둘어보면 비정규직이 대충 3할, 실업자 신세가 대충 3할인 것 같은데, 그러면 이런 상태가 보통으로 취급되어야 할텐데도 이런 상태가 아주 딱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물론 백수나 비정규직으로 지내는 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고원 아래의 비참에 해당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각 개인의 못남 (예컨대 노력부족) 에 의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다수 사람들의 실질적인 "보통" 상태가 좋지 못하니 이것을 사회 전체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이 나아가기보다는 그저 각 개인이 그 상태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훨씬 지배적인 것 같다. 



P.S - 비교 삼아 독일은 어떤지 써 달라는 이가 있어서 쓴 내용 추가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본 바, 한국처럼 "남들만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표현을 거의 들을 수가 없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쓰면서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딱하다고 여길 거라고 생각해. 근데 이것도 단순히 좋기만 한 게 아니고, 남들을 신경쓰는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점에서 한국에는 없는 다른 종류의 압력을 생성하는 것 같아. 무슨 얘기냐면, 한국에서는 남들보다 못한 사람을 깔본다면, 여기서는 남들을 신경쓰는 태도를 보이면 그런 경우를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깔보는 식으로 사회적 압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말이야. 이건 남들을 신경 많이 쓰는 다소 소심한 타입의 사람에게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안좋게 생각하니까, 남들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소심함을 보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본인도 "내 갈 길을 간다!" 타입의 인간인 것 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는 그런 종류의 압력을 느낄 것 같거든.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 이건 이것대로 단점이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자기애적인 것 같거든. 사람들(군중)은 우매하고, 나는 우월하다는 식인 거지.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개인의 정신건강에는 확실히 더 나을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술자리나 식사자리 등에 사람들이 몇몇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대중의 뜻을 거스르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잖아? 오히려 대세를 긍정하면서 너무 비판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쓰지. 근데 역으로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몇몇 모이게 되면 대중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좀 점잖은 사람들은 직설적인 표현은 안 쓰지만, 입이 좀 편한(?) 사람들은 쉽사리 대중을 향해 바보(Idiot)라는 단어를 쓰면서 비난해. 다들 저마다 세상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면서 저 잘난 맛에 살아.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대중을 바보 취급하지 않아. "대중-사람들-남들은 바보야!" 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목표를 '남들만큼' 으로 삼을 수도 있게 되는 거겠지. '남들' 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들' 을 따라하려고 애쓸 리 없잖아? 개드립 어느 글의 댓글란에서 어떤 게이가 프로포즈할 때 800만원 썼다고 하던데, 그걸 본 어떤 게이는 그정도는 해야하는건가 하면서 걱정하더라고. 그리고 이렇게 반응하는 한국인이 아주 드물진 않을거라고 봐. 800만원은 너무 큰 감이 있지만, 200만원 정도로 간다면 여친을 둔 많은 남자들이 그정도는 써야하는 건가... 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겠지. 그게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고민 안 할 거 아냐? 근데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지. 오히려 반대로 내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을 느껴.  


사족: 왜 독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다수의 행동을 비판하는 쪽으로 기울었는지에 대해 내가 현재 품고 있는 생각을 좀 써 보자면, 나는 일단 한 사회에 통용되는 사상이란 글로 쓰여지면서 오랜 세월동안 존중받아온 생각들일 거라고 봐.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사상들은 상당부분 조선시대에 식자층이었던 사람들이 토론하고 글로 남긴 이야기들에서 비롯됐잖아.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도 이 틀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중국에서 기원해 조선에서 (어쩌면 중국 본토보다도 더) 꽃핀 유교-성리학 사상은 백성이 무지렁이일지언정 천하의 근본은 백성이라고 말하고, 또 조선 조정은 성리학 사상으로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국정기조를 가지고 있었어. 이 가르침이란 다른아닌 윤리였는데, 이 윤리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본래적으로 가진, 또는 가져 마땅한 선한 성질을 밝히는 작업을 통해 세워졌단 말이지. 본래적으로 가진 선한 천성이라면 당연히 못 배운 백성들이라도 근본적으로 품고는 있는 성질로 간주되었고, 지식인들의 사명은 이를 일깨우고 더 크게 함양하는 데 있었을 거야. 이런 기조에 따라 쓰여진 글들은 근본적으로는 백성(사람들)을 존중하면서 신분을 떠나 모두가 인간이라면 무릇 따라 마땅한 바른 삶을 논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거야. 조금 과감하게 말하자면 '대중의 관습적 행동을 대체로 긍정하면서' 그중에 일부 악습은 빼고 좋은 것들을 추려서 더욱 보급하려고 했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조선에서 널리 읽힌 글이라고 알고 있는 다양한 것들이 실제로 이런 내용이지. 소학, 명심보감이나 저자로는 공자, 맹자 등등. 


그런데 서구 사회를 보면, 소크라테스 때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들의 전통은 대중이 반성적 고찰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따르고 있는 행동 양식을 어떤 '근본논리' 같은 것에 기초해 비판하려고 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 그리고 이 '근본논리' 가 학자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거지. 치열한 반성적 사고를 통해 근본이 되는 어떤 진리를 발견하고, 이것에 기초해서 '근본 원리를 발견한 똑똑한 나님' 이 '여기까지 생각을 못 한 바보같은 너희들' 을 철저히 비판하는 식이라는 말이야. 말하자면 '대중은 기본적으로 틀렸고 바보다, 왜냐하면...' 과 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거지. 그리고 이런 흐름이 서구 사회에서 텍스트화 되고 (글로 쓰여지고), 널리 퍼져나가면서 표준적인 사고방식으로 서서히 자리잡아 간 거지. 그래서 저마다 똑똑한 내가 멍청한 남들을 비판한다는 식의 사고패턴에 은연중에 익숙해지는게 아닐까 싶어. 중세에는 기독교 때문에 잠시 그런 흐름이 주춤하는 것 같지만, 근세에 이르면 다시 종교마저 철두철미하게 비판하고 파괴하는 흐름이 나타나잖아? 현대에 이르면 이런 흐름이 극에 달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모든 것을 낱낱이 비판하고 분쇄했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에 근거해 우리의 사상을 이루어야 할까?" 라는 화두를 궁구했다고 알고있어. 


동북아와 유럽의 사상에 대한 분석은 내가 한 게 아니고, 한윤형이라는 작가님께서 쓰신 걸 참고한 건데, 내가 보기에 아주 그럴싸한 설명인 것 같아. 


종합하자면, (1) 남들을 따라하지 않고 자기 주관에 따라, 개성있게, 뚝심있게 살아야만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과 이에 따른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고, (2) 대체로 저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편인 것 같아. 이게 개개인의 정신건강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대신 자기가 이미 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은 덜하게 되겠지. 한국은 이게 너무 과해서 탈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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