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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윤 Feb 20. 2019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추적하다

<Loving Vincent (러빙 빈센트)> 2017




유화로 재구성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이 영화의 제작방식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야 한다. 러빙 빈센트는 그를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을 담아 그의 화풍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100명이 넘는 화가들이 수작업으로 그의 삶과 죽음을 스크린에 옮겼다. 미술을 모르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빈센트의 화풍으로 말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은 유화를 이어붙인 것처럼 움직인다.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노고로, 작은 움직임, 빛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화면에 담아내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미술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이 영화는 제작에만 10년이 걸렸을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된 유화 프레임은 6만 점에 달한다고 하며, 짧은 제작 메이킹 필름도 있다. (https://youtu.be/QE9Q_7bfHsM) 작품의 이러한 특성 덕분에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고, 독립 영화로는 드물게 개봉 당시 롯데시네마, CGV 와 같은 대형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적 관객수 38만명을 기록하는 등 다양성 영화 분야에서 흥행하였다. 




서스펜스로 탄생한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대중들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잘린 귀 에피소드, 그만의 화풍,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유명한 작품이다. 그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폴 고갱, 그의 동생이자 예술적 후원자를 자처했던 테오 반 고흐와, 빈센트가 그와 주고 받은 편지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러빙 빈센트> 에서는 잘린 귀도, 화풍도, 그의 유명한 작품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잘린 귀' 에피소드는 영화의 극 초반부 약 1분 가량 언급된다. 그 또한 일부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로 보는 시선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도구적 장치로만 다뤄질 뿐이다. 




죽어가는 빈센트와 그의 곁을 지키는 테오



 이 작품은 빈센트의 삶에 대해서 다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을 끌어가는 토대가 되는 이야기는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이다. 빈센트의 유년시절, 파리에서의 생활 등은 주인공 아르망이 그의 죽음을 추적하며 듣는 이야기가 전부다. 



대화를 통한 빈센트의 과거 복원



 아르망은 빈센트의 우체부였던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테오에게 빈센트의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러나 테오는 빈센트가 떠난 뒤 매독으로 명을 다했고, 그는 빈센트의 친구이자 의사였던 가셰 박사를 만나기 위해 그가 말년에 살았던 마을에 머무른다. 그는 가셰 박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고자 한다. 우체부인 아버지는 빈센트가 죽기 6주 전 그에게 편지를 썼으며, '완전히 평화로운 상태'였다고 말한다. 빈센트는 자살할 리가 없다는 주장을 들려준 것이다. 



가셰 박사의 가정부와 대화하는 아르망



  아르망이 마을에 도착해 처음 만난 인물은 가셰 박사 집안의 가정부이다. 그녀는 빈센트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빈센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으며, 자신은 진작 그것을 알아보았노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르망에게 편지를 주고 떠날 것을 권유한다. 그의 질문에는 피상적인 답변만 들려주며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그러한 행동은 평화로웠던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녀는 얼핏 악역처럼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그녀야말로 이 영화를 빈센트의 죽음을 둘러싼 서스펜스로 이끄는 공신인 것이다. 아르망은 가정부와의 대화 이후로 적극적인 태도로 그의 죽음을 파헤친다. 그는 빈센트가 말년에 묵었던 여관에 머무르며 마을 사람들에게 빈센트의 이야기를 묻고 다닌다. 여관 주인의 딸, 가셰 박사의 딸, 가셰 박사의 가정부, 뱃사공 등 다양한 인물의 시각에서 빈센트의 말년이 복원된다. 


 

  

비가 내리는 마을
동네 아이를 추적하는 아르망


 

 작품은 흐름이 느슨해질 때마다 비가 내리는 마을, 동네 아이를 추적하는 아르망 등을 그려내며 서스펜스/스릴러적 요소를 만들어낸다. 특히 비가 내리는 마을은 화면을 수직으로 자르는 검은색 선들이 더해지며 단순한 풍경이 아닌, 불길한 정서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는 이렇게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의 말년을 신선한 방식으로 다뤄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서스펜스 장치의 낮은 활용도이기도 하다.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영화에서 사용된 이러한 장면들은 서사와 무관하게 오로지 서스펜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장면으로 남는다. 더불어 작품의 중심축으로 작용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얽힌 진실' 또한 영화의 막바지에 가서는 서스펜스 요소는 해결되지 않은 채 지워지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채웠던 주변 인물들




   

빈센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마제리 박사 1, 2 / 빈센트와 사랑을 나눈 마르게리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까닭은 빈센트 반 고흐의 인간적인 면모를 훌륭하게 그려냈다는 데에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위대한 예술가이지만, 예술을 사랑했던 한 평범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의 빛나는 천재성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그를 신격화시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빈센트의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서 빈센트의 인간적 면모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영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관점에서 빈센트라는 인물을 파고들지 않는다. 빈센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마제리 박사와 빈센트를 질투하고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좋은 동반자이기도 했던 가셰 박사, 빈센트와 사랑을 나눈 가셰의 딸 마르게리트, 빈센트를 광기 어린 사람으로 묘사하는 가정부, 빈센트가 마르게리트와 뱃놀이를 했던 강가의 뱃사공, 빈센트가 머물던 여관 주인의 딸, 빈센트의 좋은 친구이자 그의 편지를 도맡았던 아르망의 아버지, 빈센트의 동생 테오, 빈센트 사후 그의 편지를 모아 출판하려는 테오의 아내 요한나, 빈센트를 괴롭히던 동네 건달 르네, 빈센트의 사건을 맡았던 형사, 그리고 빈센트의 편지를 배달하려다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고자 마음 먹은 아르망. 이 작품에는 빈센트의 말년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가진 그의 주변인들이 등장하고, 아르망은 그러한 단편적인 정보를 수집해 빈센트의 말년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그의 삶에 대한 단상들은 각자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어느정도 왜곡되어 있으며 이는 관람객을 혼란시키기도 한다. 한 인물에 대한 주관적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조립하여 빈센트를 직조하는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 작품의 서스펜스를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인물로부터 수집되는 정보의 불일치로부터 미스테리를 발생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빈센트가 자살했던 총의 출처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여관 주인의 딸은 총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않았고, 가정부는 총이 여관 주인의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아르망에게 주어진 단편적 정보들은 아르망으로 하여금 여관 주인의 딸이 그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으며, 여관 주인이 빈센트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관객은 아르망의 시점을 따라가면서 아르망과 생각을 같이 한다. 그러나 후에 다른 인물로부터 밝혀진 추가적인 정보에 의해, 여관 주인이 그 총을 동네 건달 르네에게 팔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미스테리를 이끌어감은 물론이고, 인물들에게서 단편적 정보만 획득함으로서 관객이 나머지 여백을 스스로 채우도록 만든다. 관객은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밝혀지지 않은 빈센트의 삶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러한 상상의 과정은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구성된 화면이 관객을 자극하며 돕는다.  



 이 작품은 빈센트의 주변 인물을 활용함으로써 그가 예술을 하도록 돕고, 그의 삶이 알려지도록 일조한 사람들이 세상의 이목을 끌도록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적 성취를 현대에도 누리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그런 위대한 작품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도운 조력자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빈센트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함께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테오와 요한나의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특히 요한나는 간접적으로 타인의 입을 빌어서만 등장한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요한나를 언급하는 닥터 가셰



 요한나는 테오의 아내로 살며 빈센트의 후원 탓에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빈센트의 천재성과 가치를 알아보고, 그와 테오의 사후 편지를 모아 출판을 준비한다. 이 작품에는 테오의 부인이 편지를 모아 출판하려고 한다는 언급이 스치듯 등장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감상하고,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요한나의 공이 크다. 그의 예술적 성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요한나와 테오의 비중이 적었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종합적으로 이 작품은 좋은 작품이었다. 빈센트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말년을 돌아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화 방식으로 제작된 프레임들은 관객을 더욱 감상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주변인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주변인들 모두에게 새삼스러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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