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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Dec 09. 2020

우유곽이냐 우유갑이냐

맞춤법이 무서운 진짜 이유에 대하여


  글 쓰는 직업이니 맞춤법을 잘 알 거라고 단정짓고 내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올린 설명 중에 "슈커버 바닥이 걸을 때 마다 땅에 바로 닿아 해어지고" 라고 썼다. 실은 그 문장을 쓸 때, 당연히 맞는 말이 "헤지고"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만에 하나 "헤어지고"인가 싶어 사전 검색을 해 본 거였다. 그랬더니 "해어지고"가 맞다는 거다. 도통 수긍하기 어려운 맞춤법이라 다른 표현으로 바꿔 쓰려고 해 봤으나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해어지고"라고 썼다. 쓰고 나서도 내내 찜찜했다. 그 맞춤법 자체에 대한 찜찜함보다 실은 맞는 표기인데도 사람들이 쉬운  맞춤법도 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는 찜찜함이 더 컸다.


  어제 퇴근길엔 라디오 '우리말 고운 말' 코너에서, 우유곽, 우유각이 다 틀린 말이고, 맞는 말은 '우유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같은 식으로, '담배곽'도 틀린 말이고, '담배갑'이 맞다고 한다. 역시 찜찜하고 찜찜했다. 내가 말이나 글 중에 '우유갑'이라고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속으로 '카피라이터라는 자가 저렇게 엉터리 말을 쓰나' 할 것 같아서다.


  얼마 전, 이성 간에 매력을 떨어뜨리는 순간을 물어 순위를 매긴 조사 결과를 들었는데, '쉬운 맞춤법을 틀릴 때' 가 당당(?) 2위를 차지했다고 하여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맞춤법을 틀리는 시대,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들 자신조차 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해어진 양말을 신고 그간 모은 우유갑을 팔러 폐지상에 갔다" 라고 쓰기라도 하면 억울하게 천하에 매력 없는 남자가 될 것 아닌가! 등골이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로, 맞춤법은 한여름의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무섭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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