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섣달그믐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어느날의 밤이라고 하기엔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고, 새벽이라 하기엔 아직 전날의 밤에 너무 가까운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설을 쇠러 움직일 시기였고, 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연휴의 시작인 때였다.
그렇게 모호하고 불편한 시간을 선택하신 것조차 아버지다운 일이었다 라고 말하려다 보니, 아버지다운-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맞닥뜨렸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가족'에 속하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 가부장제의 해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기에 ‘어른’이 된 많은 동시대인이 그러하듯 가부장으로서 대우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단지 그뿐이었으나,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바람대로 살다 가지 못하셨다. 어느새 그 바람이 흉이 되는 세상이었다. 아들과는 의절한 거나 다를 바 없었고, 함께 살던 딸과도 당신이 바란 형태의 가족으로 사시지 못했다. 이혼한 아내는 단 한 순간도 남편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도 당신은, 그래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가족이 그의 ‘밖’에 있게 된 순간부터 아무데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입관 때, 차가운 냉기에 젖은 아버지의 뺨에 손을 대자 막을 틈도 없이 왈칵 울음이 터졌다. 임종할 때도, 문상 받는 중에도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그 순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던 외로운 아버지를 너무나 생생히 느껴서일까. 마음 속으로 죄송해요 아버지 라고 말하면서도 이게 얼마나 뻔뻔한 말인가 계속 생각했다.
내게 생전의 아버지는 내내 가해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버지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 가해와 상쇄될 리 없다. 나는 ‘보복’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엄연히 나 또한 가해한 것.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와해시킨 것 못지않게 그 붕괴를 가속하고 방조한 내게도 같은 무게의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게 공정하다.
장례를 마치고 보름쯤 후, 유품을 정리하던 동생이 아버지가 쓰던 시계들 몇 개를 사진으로 보내주며 오빠가 가지고 있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하나같이 싸구려 시계들이었다. 그 중 그나마 유일한 기계식 시계인 세이코5를 달라 했다. 얼마 전 동생이 집에 와 그 시계를 놓고 갔다. 늦은 밤 퇴근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세이코5를 보았다. 손에 들고 용두를 뽑아 태엽을 감으니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갑자기, 입관 때처럼 눈물이 쏟아져 당황했다. 뺨과 입술이 금방 눈물에 젖었다. 관 속의 아버지에게서 그의 외로움을 느꼈다면, 남기신 고장난 시계에선 그의 초라한 생을 느껴서다.
아버지는,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셨다. 생물학적 흔적이라 할 아들조차 실은 남기지 못한 것과 매한가지니 몇만 원짜리 시계 하나조차 멀쩡하게 남기지 못한 건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나 또한 별 다를 게 없을 터. 아버지의 것보다 좋은 시계는 남길 수 있겠지만 그게 다일 뿐, 온전하고 온기 있게 이어지는 관계를 남기진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잔혹하게 끊어 놓고 나로부터 새로 이어지는 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니까. 나는, 내가 아버지에게 한 대로 받게 될 거다.
글피 일요일이 사십구재다. 간단히 우리 먹는 음식으로 아침상을 차려 절하고, 가족과 빈소에 가서 인사드리고 오려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