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씨네필 Kimcine feel Jul 27. 2020

전주 사람이 본 <비긴 어게인_전주>

‘같이’의 ‘가치’

비긴 어게인 팀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주로 온다는 이야길 들었다.

어? 나도 한 번 방청 지원을 해볼까?

물론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요즘은 특히나 개인적으로 속 시끄러운 이야기가 많아서 내 이야길 따로 적고 싶지 않았다.

굳이, 또 적기 위해선 그때 기억을 떠올리거나 내 아픔이 꺼리가 되어야 했으니까.

(보통 모든 공모전, 특히나 개인의 이야기를 묻는 공모전에서는 극적인 불행과 불운이 주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까지야... 싶겠지만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안 적었다.




#. 비긴어게인 시작

비긴 어게인 방송이 일요일 11시였다. 그리고 촬영 날짜는 지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왜 나는 적지도 않은 방청 공모를 마음에 두고서 ‘ 아 지금 이 시간쯤 전주 어디서 촬영을 하고 있겠구나. 끝났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그 날밤을 보냈다. 아마 아쉬움이 컸었나 보다. 여하튼 일요일 11시가 되어서 알람이 울리자, 곧장 티비를 켰다.

익숙한 동네 익숙한 길과 건물들. 그 순간 화면을 통해 내가 봤던 건 내가 지나온 공간들이었다. 아, 내가 저기서 뭘 했었는데. 저기는 누구랑 참 많이 갔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건, 평소 보던 곳들도 티비라는 매체를 타고 흐르니 새로워 보이더라.



#. 그냥 _

평소에 가장 멋지다 생각하는 사람의 부류가 외모의 생김새를 떠나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이가 조금 어릴 때는 잘 몰랐던 매력이 바로 이런 거였다.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 물론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걸 즐기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중간에 자기 일을 포기하곤 하는데. 비긴 어게인 출연자들 대부분 무명의 시절이나, 자신의 캐릭터를 잡아가기까지 꽤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더욱이 헨리는 슈퍼주니어라는 그룹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새로이 짜 나가며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했고, 그러한 자신을 굉장히 가치 있게 여기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랩이며 노래며 만능으로 부르는 크러쉬도 그 매력이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 후회


갈걸. 써보기나 할걸. 이런 후회가 드는 장면이었다.

크러쉬가 울었다. 평소 크러쉬에게 열렬한 팬의 모습을 자처한 건 아니지만, 저렇게 정상을 찍을 만큼의 아티스트가 ‘길’이라 묻는 이 노랫말에서 먹먹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그렇기 힘들진 않구나 괜한 위로가 됐다. 뭐든지 혼자는 굉장히 외로운 법이니까. 그런데 크러쉬라고 하는 정상급 가수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딘지.’ 이러한 원론적인 질문에 동의하고 감정이 동요된다는 게. 똑같은 한 사람으로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느낀 감정이라고 하니, 나도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장면에선 그 시간의 분위기를 함께 느꼈으면 더 좋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유의 가치_’같이’

비긴 어게인 코리아를 보면서 든 생각.

왜 저렇게 전국으로 돌아다닐까. 버스킹의 의미가 무얼까.

어제 방송을 보고 나니까 알 것 같았다. 같이 한다는 게 꽤 힘이 되는 일이었다. 지금껏 관객과 거리가 먼 공연에 익숙했던 아티스트에게도 관객의 숨소리와 눈빛이 마주하는 버스킹 무대를 새로웠을 거라 생각이 든다. 내가 가끔은 영화가 아닌 연극을 보러 가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과도 맞는 부분일 테다. 대학원 수업에서 단체로 혜화동으로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배우와 눈이 마주친다는 느낌을 받으며 공연을 보는 게 심장이 떨렸다.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마찬가지로 비긴어게인의 버스킹 공연도 그러했다. 내가 가봤던 곳, 티비라는 주 무대에서는 다뤄주지 않았던 지방러의 공간. 나만 알고 있어서 좋았지만 그 공간을 공유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 혼자가 아닌 기분.

# 그냥 지나가면 돼요.

내가 좋아하는 크러쉬의 노래 중 일부인데, 이때 크러쉬가 ‘따봉’ 손을 하며 뒤로 엄지를 넘긴다. 지나가세요라는 의미인데. 이게 얼마나 통쾌한지.

크러쉬가 방송에서 울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오랜 시간 견뎌온 크러쉬라는 사람이 사람처럼 느껴져 좋았고, 나도 저렇게 몰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가끔은 내 의도완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긴 신경 쓰지 않기. 잘 모르겠는데 어떤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져다준. 최근 들어 본 눈물 중 가장 진솔했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2시의 잔상이 3시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