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강북문화정보도서관 동아리 '에세이를 부탁해' 2월 주제 여행
어디를 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즐기고 봐야 하는지? 그게 왜 좋은지는 각자가 다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적당히 채우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다 보면 점점 더 작은 교집합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가 여행하기 편하다고 말한다. 나는 혼자서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다. 이유를 들자면 겁이 많아서다. 이상한 상상력이 발동해서 언제나 범죄의 표적이 될 것만 같기도 했다. 마침내 혼자 가고 싶어 졌을 때는 두 아이와 남편이 발목을 잡았다. 혼자 여행 가는 것은 내가 아직 가봐야 할 산이겠다. 내가 신혼부부 때부터 4인 가족이 될 때까지 여행을 다녀오면서 느낀 여행의 이유들을 적어보았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여행을 다니며 알아낸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남편은 신혼여행 때부터 내게 전권을 맡겼고, 나는 태어나 처음 가게 되는 해외여행에서 몇백만 원 단위의 돈을 써야 했다. 그곳은 하와이였고, 패키지 여행이 우리를 금세 호구로 만들기 위해 도사리고 있었다. 그나마 풀패키지가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관광상품으로 짜놓은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며 가이드에 끌려다니는 게 우리에게 전혀 맞지 않았다. 무릎이 까진 남편에게 자꾸만 나를 엎고 행복한 연출 사진을 찍게 했다. 우리가 사진을 거부하면 그가 오히려 역성을 냈다. 가이드는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글거려하면서 촬영에 응했다. 다시는 가이드의 기분을 맞추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하와이 자체는 너무나 좋았지만, 다시는 그렇게 끌려다니지 않고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간 곳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부산이었다. 부산에 연이 닿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껏 가본 적이 없었다. 당시 뚜벅이었던 우리는 배낭을 메고 부산 KTX를 타고 갔다. 부산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 지역을 돌아다니며 구경했고, 해운대 바다를 만끽했다. 문제는 숙소. 게스트하우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몰랐다. 신혼부부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잡은 것이다. 더러운 침구부터 옆 건물 뷰처럼 모텔보다 열악한 수준이었다. 2박 3일 일정에서 하루만 묶고 남편은 다른 숙소를 알아보자며,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에게 하루치를 환불해 달라고 했다. 그는 환불규정을 들며 버텼지만 남편은 열악한 숙소의 불만을 토로하며 받아냈다. 잠깐 자는 숙소비를 늘 아까워하다 보니 가격만 생각하다가 벌어진 실수였다. 여행을 마치고 뼈저리게 느꼈다. 숙소에서 쉴 때도 자괴감이 들지 않을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겠다고. 중간에 계속 불편해서 잠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의외로 즐거운 일은 실수를 하고 나서 벌어진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백팩을 멘 신혼부부는 해운대 바다 근처 숙소를 전전하며 다음 숙박할 곳을 찾았는데, 바닷가 바로 앞에 파도를 보며 잠들 수 있는 통창유리숙소가 우리가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7만 원에 단 3만 원만 추가하면 묶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도 검색도 잘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좋은 숙소가 어디인지 한눈에 체크가 되었다. 그 당시가 2014년이라 호텔숙박 관련 시스템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것도 있다. 이렇게 숙소를 찾은 경험 때문에 우리는 다음에 여행을 갈 때면 우리가 자주 가는 여행지에 더 좋은 숙소가 있는지 여행하며 기록해 둔다. 좋은 숙소의 기준은 너무 비싸지 않지만 적당히 깔끔하고, 바다나 산, 우리가 즐기고 싶은 장소와 가깝거나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나 놀 거리, 시장이 있으면 된다. 보통 오래전에 지어진 숙소들이 위치가 좋지만 약간 노후되어서 저렴하다. 청소상태만 좋다면 가격이 다소 저렴해도 불안해하지 않고 가게 되었다. 게다가 요즘은 리뷰를 보면 충분히 숙소에 대한 체크가 가능하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고민했다. 2박 3일의 여행에서 먹고 쓴 돈을 일일이 적고 있었다. 그 리스트를 바라보며 이 돈을 쓰면서 왜 여행을 가야 하는지?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지? 단지 남들이 여행을 가서 가고 싶어 하는 것 아냐? 남편은 언제나 해외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나의 꿈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나도 어떤 이유를 더욱 찾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소소한 순간에서 여행을 재미가 결정되었다. 부산 해운대 매점에서 부산에서 만든 소주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자, 부산토박이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씨~원!"
그 특유의 어감이 주는 쿨하면서도 남자다운 말투가 재미있었다. 남편과 나는 한참을 나와 할아버지의 억양을 흉내 내며 웃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주고받는 에너지, 지역의 분위기를 얻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언제나 체인점이 아닌 전통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하신 원주민이 살고 있는 전통시장을 되도록 방문하려고 한다. 오래도록 굳어있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말투를 엿보고 싶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모두 비슷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여행의 즐거움을 꼽자면, 우연한 선택으로 빗어진 '한 장의 그림'을 건지는 것이다. 바다에 와서 파도가 치는 걸 보며 맥주를 마신다. 여름날 그 도시 해변가 모래사장의 모래는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낮동안 달궈져서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 안에 발가락을 넣고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면 그것으로 완벽하다. 그때 버스킹을 하는 한 아저씨의 색소폰 연주가 시작되고, 그는 완벽한 그루브로 음을 가지고 논다.
여행의 보상이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만나는 낯선 일들을 그대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숙소 예약에 실패했든 저녁 식사가 성공했든. 그런 우연한 순간 한 장면을 평생토록 추억하며 함께 여행했던 남편과 이야기하게 된다. 그때 거기 참 좋았지? 여기서 나는 거기서 그치지지 않고 몇 번이고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그때와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우리는 더욱 바빠졌다. 남편은 회사 일에 쫓겼고, 나는 육아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외줄 타기를 하듯 지내왔다. 아이들이 영유아 시기에 접어들고는 다시 조금씩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쳐있던 마음과 부부 사이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도 여행을 가는 것이 필요해졌다. 아이들과 여행을 가자 일단 짐이 많아졌다. 배낭가방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커다란 짐에 실고 차에 카시트를 넣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더 작은 교집합. 아이들을 놀아주기 좋은 워터파크가 있거나,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날씨에서 네 가족이 무리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에서 묵게 되었다. 숙소 비용은 1.5배가 되었고 식비는 2배가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거리도 제한적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이들도 함께 여행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며 함께 선택권을 주려고 하고 있다. 아주 작고 작은 교집합을 아이가 다 끼워 맞출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선택한 곳을 갈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너무 비싸거나 멀거나 지금은 그 동네에 꽃이 피지 않아서 제철이 되었을 때 가자고 한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다 보니 가장 난감하고 힘든 것이 현실적인 비용문제다. 아이들은 이 여행이 얼마짜리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돈에 무지한 여행자는 없다. 엄마랑 아빠가 갔던 하와이에 가고 싶다. 일본에 가고 싶다. 등 아이는 순식간에 해외여행을 찍고 돌아온다. 하지만 4인분의 여행비는 계산기를 두들기다 보면 금세 천 단위가 된다.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큰 자랑거리이다. 자랑을 위해 여행을 가야 하나 싶을 정도다.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해외를 간다면 어디를 왜 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과정은 더욱 내게 고민이 되고 있다. 결국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2-3년 안에는 가게 될 것 같다. 베트남? 태국? 일본? 내가 막연히 던질 때마다 아이는 설레한다. 유튜브로 그 그 나라 이름을 검색해서 음식과 언어를 찾아보고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통장잔고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식은땀이 흐른다. 그럼에도 아이와 함께 이 교집합도 해내고 싶다.
우리가 여행하는 법. 함께 선택하며 즐거워하는 순간을 찾아내고 집중하는 동안 잠시 행복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온전히 우리의 행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것이 다시 잘 살아낼 힘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엄마와 아내를 벗어나, 가족 울타리의 작고 작은 교집합을 벗어나, 나로 여행하는 법도 서서히 연습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남편 애들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