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가연 May 08. 2024

내가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이유

작년부터 나는 일을 줄이고 월수금에는 아이를 수영장에 보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생존수영 과목을 배운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이렇게 공을 들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이 조금 스스로 생각할 때도 과하다고 느낀다.


5월부터는 일곱살인 둘째도 수영을 보냈다. 물에서 둥둥 떠서 느린 오리처럼 헤엄쳐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심이 든다.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수영을 가르치고, 물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는 일에 온 힘을 쏟는 것은… 2007년 3월 30일. 내가 다니던 대학교 동기들에게 벌어진 익사사고 때문이었다. 엠티를 가겠다던 동기는 한순간에 청춘을 등지고 떠나야 했다. 우리 과 동기들은 갑자기 떠난 동기 3명의 장례를 치러야했고, 울며 불며 관을 들고 그 자리에 함께 놀러갔던 아이들은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다. 물에 가라앉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 당시 뉴스에서는 연일 철없는 대학생들이 벌인 내기로 익사 사고가 났다며, 죽은자를 탓 했다. 아무렇게나 달린 댓글에는 술 먹었겠지라며 참사를 조롱하거나 사고 당사자를 비하했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이상한 댓글을 다는 걸까.


그 사고 이후, 내가 느낀 점은 하나다.


사람은 아주 쉽게 죽는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 그 완전한 이별. 그 소멸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 이후, 바다에 놀러가서 새찬 파도에서 노는 청춘을 보면 나는 언제나 가슴이 떨린다. 그들이 바람 앞의 촛불 같아서다. 죽지 않기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본다.


상처는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에 남아 그 사람의 미래를 지배하는가? 친구의 죽음은 지금까지 나를 쫓아다닌다. 3월 30일만 되면, 3월에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고 물이 불어나면, 나는 언제나 친구가 죽기 전날 비가 내렸고, 그 비에 불어난 한탄강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강에 들어갔던 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때 그 순간, 그 자리만 아니었더라면, 친구는 아마도 내 나이가 되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나도 죽을 수 있다. 아주 쉽게.

그 사실을 되뇌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나는 살아간다. 내 아이들도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아이에게 차를 조심하라고. 물을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수영을 가르치고. 교통신호를 알려주고. 안전수칙을 수시로 알려준다.


매일 수영장에서 아이는 물을 차며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튼튼해진 다리로 달려와 나에게 안긴다. 나는 아이의 젖은 머리를 털어주고 행복해한다. 아이가 나를 따라주어서, 내가 수영을 하자고 설득했을 때 들어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언젠가 아이에게 엄마가 왜 수영을 그렇게 빨리 가르쳤는지 알려줄 것이다. 세상에 많은 죽음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로 우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아가자고 손을 꼭 잡으며 매일 말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말로 일기 쓰는 남편과, 글로 속 푸는 아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