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전쟁1
남편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재미있다.
이유는 나와는 너무나 다르면서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 다 감정적인 f이고, 남편은 논리적인 T가 높고. 나는 계획적인 J라 준비물을 잘 챙긴다. 남편은 거의 일이 생기면 맨몸으로 나가고 심지어는 핸드폰도 지갑도 카드도 없이 혼자 나가서 서 있는다.
그러면 나는 집안의 가스를 끄고, 불을 다 소등하고. 마당에서 밖으로 난 세 개의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문이 세 개가 잠겼는지 확인하고 50미터쯤 골목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다시 문과 가스를 확인한다. 남편은 내가 늦었다며 차에 올라타며 씩씩거린다. 그다음 주차장에서 나가는데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고 차키도 가져오지 않은 걸 안다. 내 카드를 쓰고 내 집 열쇠에 붙은 차키를 이용해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물건을 챙기지 않은 그를 조롱하며 나는 내 물건을 빌려준다.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사람과 생활을 같이 영위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없어도 있어도 괴롭다. 없으면 외롭고, 있으면 거슬려서 괴롭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이 또 있을까.
그 사람이 회사에 갔다가 적당히 내가 필요할 때 일찍 퇴근해서 애를 봐주고, 돈을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없고, 그는 거의 그의 텐션대로만 산다. 그의 마음대로 널뛰며 회사에 일이 없으면 가고 싶은 시간에 가고, 일이 없으면 갑자기 집에 와서 나를 놀라게 한다. 일이 있으면 밤새거나 며칠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의 리듬대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사람이 나는 제일 싫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의 가장 중요한 방어기제와 내가 부딪히는 것이 있다. 바로... 말습관.
남편은 자기가 회사에서 힘든 이야기를 반드시 집에 와서 나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한 마디로 자기 독백을 나에게 떠들면서 감정받이를 해주어야 한다. 거의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내 답은 정해져 있고, 자신의 답이 옳았다는 것에 대해서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식의 대화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쏟아내듯, 자기 말만 하고... 내 말이 시작되면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볼일을 본다. 나는 그런 인간을 혐오한다. 귀에다 똥을 싸는 것 같아서. 남편은 그런 짓을 자주 했고, 그래서 내가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남편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굉장히 화를 내면서 삐진다.
... 부들부들.
어제는 시댁에 어버이날이어서 가서, 남편이 이기적이라며 시어머니와 형님과 함께 힘껏 씹어주었다. 시어머니는 나보다 더 센 페미니스트다. 60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회사에서 일하시고, 남편보다 생활력이 좋으시다. 그런 시어머니만큼, 우리 엄마도 퇴직한 아빠 대신 대기업 다니며 돈을 번다. 한 마디로 아내들의 전성시대랄까. 남편들은 지금 돈 잘 번다고 해서 유세 떨고 실수하면 말년에 머리채 자주 잡힐 것이다. 그 풍경이 친정과 시댁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볼 때마다 왜 내가 사이다인지..
아무튼 남편과 나는 그렇게 다른 인간이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았다면 아마도 결혼을 하지 않았겠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던 시댁식구들은 아마도... 나의 미래를 그 당시에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남동생이 결혼할 때 남동생의 아내에게 도망가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근데 생각보다 남동생은 남편으로는 가정적인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꽤 악동이었는데..
나는 남편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의 방어기제는 글을 쓰면서 혼자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다. 가장 슬프고 힘들 때는 글을 쓴다. 물론 예전에는 나도 친한 친구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한 행동에 마음에 걸릴 때 잘한 짓인지 확인하고 물었었다. 물론 지금도 물어볼 때가 있지만 거의 묻지 않는다. 남들은 내가 고민하는 사건에 대해서 듣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1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내가 잘못했는지, 그 행동이 틀렸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찜찜한 것이다.
어쩌겠는가 지난 것을.
난 이미 그 당시 힘들었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더 이상 남들에게 답을 묻지도 않고 나의 치부될 이야기를 굳이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이해받고 싶어서 했던 고백들이, 나를 질투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험담거리가 될 뿐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웬만한 건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글을 통해 정리한다. 더 은밀한 욕은 일기장에, 그나마 순화시킬 수 있는 것은 브런치나 블로그에, 번듯한 사진과 함께 자랑스러운 것은 인스타에 나란히 정리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먼 타인들이 내 글을 읽는 것 같다. 가족들은 내 이름만 검색해서 나오는대도 절대로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아마도 나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겠지. 내가 궁금하지 않아서겠지.
가족도 궁금해하지 않는 일상을 나는 나를 위해 정리한다. 타인들은 스쳐 지나갈 일상을 소중하게 온라인에 진열한다. 모두 나 자신을 위한 온라인 찬장이다. 하나씩 꺼내보며 나에게 의미를 더해준다. 나는 그 행위를 통해... 나에게 다시 묻는다. 이 작업이, 이 일이, 이 그림이, 이 글이 어떤 의미였는지. 초라한 좋아요 수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기록한다. 마치 남편이 내가 듣지 않아도 화장실로 도망가는 내가 변기 위에 앉아서 일을 봐도 문을 열고 끝없이 지껄이듯.
그렇게 나 스스로 답을 정하고 다음 할 일을 고르고, 다음에 쓸 글에 대한 작업 계획을 세운다.
타인에게 끌려다니면서 새로운 워크숍을 쫓아다니거나, 새로운 아카데미를 수강하거나, 새로운 스터디를 만들거나 새로운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서 외주를 따려고 몸부림을 치기 싫으면서 치고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성사되지 않아도.. 이상하게도 좋다. 한적하니까 그것도 오히려 좋네.. 그럼 이 시간에 아이들과 놀고 걸어 다니면 되지. 한 권의 책을 시간을 즐기며 읽으면 돼지 싶다. 자잘한 돈을 버느라 밤을 새우고 한 줄의 이력을 만드느라 커피를 들이마시고 일하고, 배가 아팠던 지난 날들.
그것들이 쌓여 자잘한 성과를 냈지만. 고통스러웠다. 늘어난 체중. 지친 만큼 잦았던 부부싸움.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이게 다 남편의 일방적인 말을 들어주지 못해서였다. 그 버릇은... 시어머니와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늘 대화를 나누며 어머니가 아들의 마음을 위로해 줬던 습관 때문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며... 나는 시어머니처럼 남편에게 그 일을 대신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여전히 일방적인 그의 말이 자주 짜증이 나지만. 그까짓 들어주는 일. 해주지 뭐!
지금은 지친 남편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게 되었다. 꾹 주먹을 쥐며 참는다. 가끔 그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면서 들어준다. 억텐으로 칭찬도 해준다. (시어머니는 칭찬대마왕이셨다.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에게 칭찬을 해주면 남편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불안한 선택을 한 남편의 편도 들어준다.
"그때 그 말을 해서 회사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나중에 사과했잖아. 그럼 됐지! "
아이를 키우며, 우리도 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