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그 순간을 알아차리도록
이런저런 상황이 복합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엇이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어쩌다가 그 모든 게 쌓이고 쌓이다가 내 우울을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쩌면 저 기저에 모든 게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고 있었겠지. 그저 잘 외면하고, 잘 묻어두었을 뿐.
일종의 수맥을 찾아 끝없이 물이 샘솟는 것처럼, 예전엔 별일 아니었던 일도 별일이 된다.
[증상의 기록]
- 자주 운다. 혹은 자주 멍해진다.
- 가끔은 내가 왜 우는지 모르는데 그냥 운다. 눈물이 계속 난다.
- 대체 유치원 아이들이 조잘거리는 영상을 보고 울게 뭐람.
- 이 순간을 즐기자는 게 인생 모토라는 게 왜 슬픈가
- 스스로 때린다. 물리적으로 때리거나 할퀸다. 그러니까 자해를 한다.
- 때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가끔은 상처 내는 것을 상상한다.
- 눈앞에 보이는 세탁 액체세제를 한통 다 먹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든다.
- 아까는 덤프트럭이 내려오는 게 보이자 도로로 뛰어드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 무언가가 싫어서 그렇다기보다 그냥 내가 세상에 없으면 어떨까 싶다.
- 내가 세상에 없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슬퍼하겠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든다.
-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그냥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세상을 반드시 떠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변화가 없을 것 같다.
- 그저 사는 게 귀찮다.
- 일을 덜 벌린다.
- 일을 하다가도 순간순간 멍해진다.
- 재즈를 들으면 우울감이 배가 된다. 특히 쳇 베이커는 쥐약이다.
- 술을 먹는 순간에는 괜찮지만 술을 다 먹고 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다.
- 자책감과 자기혐오가 순간순간 나를 때린다.
- 내가 미쳐가는 것 같아서 싫다.
- 이게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해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 처음엔 상담만으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지금은 약이 필요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오후 내내 속이 안 좋다. 커피 향만 맡아도 토할 것 같다.
- 내가 왜 울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울고 나서 내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그 과정도 기억나지 않는다. 구렁텅이로 빠졌다가 잠드는 그 과정이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나.
- 나의 싫은 점이 자꾸 찾아진다. 그만 찾아도 되는데 계속 찾아진다.
- 일이 잘 안 된다.
- 갑자기 확 불안이 찾아오면, 정말 큰 자극이 아닌 이상 집중이 잘 안 된다.
- 호흡이 조금씩 불안정해지고, 손이 떨린다. 한 번 그러고 나면, 숨이 참 잘 안 쉬어진다.
- 그래 인지왜곡. 내 탓이 아닌데, 내 탓인 거 같다.
- 술을 먹지 않았는데 마치 숙취처럼 온몸이 너무 무겁다. 속도 안 좋고, 식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것 같다.
- 화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 수건이라도 바닥에 떨어질라 치면 다 부수고 싶다.
- 나 스스로가 너무 짜증이 나는데, 보통이면 그냥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아 한참을 그 짜증에만 얽매어 있다.
- 우울증은 생각보다 끈질기다. 분명 괜찮아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나타난다. 안녕? 내가 간 줄 알았지? 다시 왔어!
-다시 찾아온 우울은 이젠 처음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의 그 트리거가 아니더라도, 다른 문제라도, 조금 오래된 문제라면 나를 다시 늪으로 밀어 넣는다. 이건 괜찮을 것 같았니? 이젠 익숙해졌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아니야. 니가 아직도 이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자체가, 니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아니 어쩌면 너는 노력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어. 말로만 노력한다 할 뿐. 이라며.
[의외의 면들]
- 꽤나 잘 웃는다
- 재미있는 것도 있다
- 운동도 나름 열심히 한다
- 사람들도 잘 만난다
- 막상 상담을 할 때는 괜찮은 것 같다
[노력의 흔적]
- 친구들에게 전화한다
- 혼술을 끊어보려 한다. 아니다 그냥 술을 끊기로 했다
- 일을 벌이기로 했다. 일로 관심을 돌리려 한다.
-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성취감을 느껴보려고
- 해를 보러 나간다
- 심리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사 배정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 병원을 가기로 했다. 너무 심할 땐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에는 정말 병원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