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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예 Feb 22. 2019

신혼, 꼭 행복하지 않아도.

우울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나는 20대 후반의 여자 사람이다. 대학원 복학 예정이며, 마케팅 프리랜서로 일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먹는 꾸덕한 그릭 요거트와 사과를 좋아한다. 대단한 커리어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언제나 먼저였다. 몇 번의 아주 다른 연애를 겪었고, 2년 전 오직 내 눈에만 키 작은 김수현을 닮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또래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다. 사람 아기가 아닌 하얀 강아지 두 마리의 엄마이자, 우리 엄마의 하나뿐인 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매일은 언제나 평범하지만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의 감정과 기분에 온 신경을 쏟게 된다. 오늘의 나, 괜찮니?




나는 2년째 우울증 치료 중이다. 맞다. 결혼과 동시에 나의 우울증 극복기 또한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결혼을 계기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이 응급실에 실려간 지 오래지만, 투명인간처럼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중환자실로 옮겨져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읽을 사람은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이 아파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산소통이 되어주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아름답고, 축복받아 마땅할 사랑의 결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온몸과 마음으로 배웠다. 분명 사랑 없이 한 결혼이 아닌데. 오롯이 사랑으로 인해 선택한 결혼이라도 처음부터 행복만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씁쓸하게만 들렸던 지난날들과 달리,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냐고 버럭 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왠지 세상에 나만 빼고 다 경험하는 것 같은 꿀 떨어지는 달달한 신혼 생활과 난무하는 #럽스타그램을 SNS에 올릴 의지조차 우울증 따위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서러웠다. 많이 혼란스럽고, 속상했던 결혼 준비과정부터 파란만장한 결혼식, 그리고 산소호흡기만 꼽고 있다 돌아온 신혼여행과 그 후의 일상까지. 흔히 말하는 '결혼하기 딱 예쁠 나이'에 결혼한 나에게, 신혼은 그다지 달콤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결혼해서 좋겠다는 주변의 축하가 하나도 고맙지 않았고, 간혹 행복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돌아오는 따가운 눈초리는 더 큰 상처였다.


결혼 후 2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 아주 조금은, 용기라는 게 생겼다. 가끔은 웃을 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풍족하고 원만하게 결혼해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들도 많겠지만, 보이는 곳에, 또 보이지 않는 곳에 나와 같이 마음에 병을 끙끙 앓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결혼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것일 수 있음으로. 시시콜콜한 나의 이야기들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 또한 잊고 있던 기쁨을 조금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우울을 함께 떨쳐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뭐, 사람이 우울할 수도 있지! 하고 하이파이브하는 웃픈 위로 정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우울한 신혼일기. 나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마음의 공감이 필요한 독자를 위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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