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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예 Aug 01. 2023

맞아, 나 아파. 그래서 글 써.

강박

어제 첫 글 개시 후, 앞으로를 어떻게 기록할까 생각했다.

대단한 주제를 찾아야 할까?

좋은 글이라면 웅장한 울림을 주어야 할까?


자유로워져 보자고 쓰는 글이 부담이 되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과 그 내면에 대해 표현해 보기로 한다.

우울증, 강박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나의 현재 상태를 정의하는 의학용어들.

환자라면 환자, 특별하다면 특별한 나.

괜찮은 '척, ' 깨달은'척, ' 나은 '척'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갈 것이다.


오늘은 강박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2019년 첫 우울증 진단 후, 우울이의 단짝들도 품에 안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모아담은 것 같다. 그중 나의 일상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것은 바로 강박이다.


OC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란, 강박 및 관련 장애의 하나로서, 강박적 사고(obsession) 및 강박 행동(compulsion)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환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충동, 장면이 침투적이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사고를 경험하며, 강박 사고나 완고하게 따르는 규칙에 따라 일어나는 반복적인 행동 또는 심리 내적인 행위인 강박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전적 의미를 의인화한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나의 일과는 이렇다. 


평일 오전, 남편의 출근시간과 아이의 등원시간을 지키려면 나는 무조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모든 게 지체되어 남편과 다투는 일이 생기는데, 나의 가장 큰 공포는 남편과의 마찰이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기상 직후부터 난 분주하다. 영양제 챙겨 먹기, 저녁식사 재료 손질 및 준비, 조리기구 꺼내놓기, 설거지, 설거지 정리, 아이 등원가방 챙기기, 아이 등원룩 며칠치씩 미리 세팅해 두기, 내일 아침메뉴 정해두기, 과일 손질, 음식 소분, 놀잇감 정리 등, 남편과 아이가 깨어있을 때 손과 몸이 모자라, 하지못할 일들을 미리 해두지 않으면 내내 초조하고, 하루가 이미 망가진 것 같다. 결혼 전의 나 역시 슈퍼 J로서 꽤나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함께 사는 식구들이 늘어갈수록 스스로 많을 부캐를 자처하면서, 강박은 점점 심해져 왔다. 오전 7시 50분, 남편이 출근하기 전까지 나는 샤워하고 오로지 아기를 돌볼 준비를 마쳐야 하고, 집은 말끔해야 한다. 남편이 청소와 설거지 등 가사의 일부를 도와주지만, 모두가 떠난 후 남은 집을 치우고 치우다 보면 오전은 금세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난다. 


오후가 되면 쉴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 혼자 바쁘다. 남편과 아이가 부재중일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장보기, 아이 선생님과 연락하기, 냉장고 정리, 가족일정 조율 등, 자잘한 일들이 나의 to-do list에 나열되어 있다. 


식사도 그렇다. 몇 년째 아침은 꼭 사과와 그릭요거트, 식빵과 아몬드,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다. 점심도 그렇다. 혼자 무언가를 차려먹기 귀찮고, 왠지 처절하다 느껴져서 나는 꼭 베이글, 샌드위치, 토마토와 계란 등 냄새가 나지 않고, 치우기 편한 메뉴를 점심으로 먹는다. 이상하게 점심은 늘 먹기 싫은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고, 미루고 미루다 늦게 먹는다. 평일도, 주말도. 저녁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려 노력 중이고, 경제적 소득이 없는 내가 생성한 나의 '주부' 부캐의 책임감으로 대부분 요리를 한다. 갖출 것 다 갖춘 식사를 준비해야 만족스럽고, 나 또한 하루 중 식사다운 식사를 이때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일상이 나라고 편하고 즐거울까? 결코 아니다. 나 또한 숨이 턱턱 맡기고, 쉬고 싶다. 간절히. 이런 마음을 토로하면, 가족이건, 남이건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좀 내려놔!" 


나도 그러고 싶지. 내려놓고 싶은데, 내려놓지 못해서 아픈걸. 내 마음의 병을 키워가는 우울이, 강박이, 불안이, 공황이. 이 무리를 어떻게 하면 미뤄낼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밀어낼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나에게 명쾌한 해답을 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한 병원, 상담사 등 나름대로 도움을 찾아 SOS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결국 그 누구도 내가 되지 못하기에, 정답을 찾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나고, 곧 두 돌을 앞둔 지금, 나는 가장 절박하다. 이 모든 마음의 아픔을 한시라도 빨리 걷어내야 아이에게 나의 병들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엄마고 뭐고, 난 건강한 엄마이고 싶은데, 마음만 앞서고 몸과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스스로가 참 밉다. 세상을 너무나 빠르게 흡수 중인 나의 아이에게, 건강한 엄마로 거듭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나아져야 하는데. 머리는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마음은 '아마 넌 나을 수 없을걸?'이라 이야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박장애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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