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아니에요.
문득 20대 때 영어 과외를 해주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이들. 수업시간에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그 외 시간에는 '누나'라고 칭했다. 당시 아이들이 나를 '누나'라고 부른 이유는 심플했다.
"20대면 누나고, 30대면 아줌마지."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아직 몇 년 남았네. 아직 난 누나구나. 하지만 참 안타깝게도, 그 몇 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나는 이제 만 나이를 적용해도 피해 갈 수 없는 30대다. 심지어 한 아이의 엄마다. 누군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러도 반박할 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육아를 핑계 삼아 나를 돌보지 않았다. 화장품 유통기한이 다 지날 때까지 나를 꾸밀 일을 만들지도 않았고, 드라이 클리닝 해야 하는 옷은 처박아둔 채 얼룩진 티셔츠와 운동복만 입었다. 나는 나를 방치했다. 내가 아이를 낳아도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되어갔다. 그 와중에 내가 굳건히 포기하지 않은 건 단 하나.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절대 미용실에 자주 가진 못한다. 우리 집 강아지들이 나보다 훨씬 자주 미용할 정도로.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잘라보는 것은 어떻냐, 아이 키울 때는 단발머리가 제일 편하다, 어차피 언젠가 자르게 되어있으니 지금 잘라라. 아이를 낳은 후 자주 들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나는 내 머릿결이 아무리 상했을지라도, 단호하게 긴 머리를 유지하겠다고 고집한다. 흔해빠진 아줌마가 되기 싫어서. 고리타분한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뒤통수만 봐도 비슷한 아줌마 중 하나이기 싫어서, 난 머리를 기른다. '아줌마'일 바에 차라리 이모이고 싶고, '누구 엄마'이기 전에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단순히 늙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주름 좀 생기면 피부과 가서 시술 좀 받으면 나이 따위 조금은 가릴 수 있다. 내가 아줌마가 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이유는, '아줌마'라는 두리뭉실한 틀에 속박되어 '나 자신'으로서 흐릿해져 가는 게 싫어서다. 아직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내 젊음이 아까워서 그런다. 뭐라도 저질러보고, 나를 한 번쯤은 예뻐해 줘 보고, 그때 가서 아줌마가 되어도 늦지 않지 않을까?
결혼 후, 나의 유년기부터 쌓여온 모든 상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여러 형태의 마음의 병으로 나를 덮쳐왔을 때, 나는 그 밑에 깔린 채 여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어나고 싶은데, 머리로는 다 아는데. 그까짓 짐 좀 걷어내고 다리에 힘 꽉 주고 손 탁탁 털고 일어나면 된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아는데. 마음이 따르지 않는 이 답답함은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알면서 왜 못하냐는 말은, 상처에 소금뿌리는 격이다.
나를 포함한 세계 인구의 3퍼센트는 치유받지 못한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치유된다는 약속도, 보장도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쩌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 주어진 세상이 우울, 불안, 공황, 강박으로 가득한데, 도망가는 샛길은 없다. 아내 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절망에 절망을 더하는 날들이 많다. 나라는 사람은,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중증 '환자'인 나도, 보통의 30대처럼 공상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한다.
'나도 언젠간...'
나도 언젠간, 다 나아질 수 있겠지? 나도 언젠간, 멋진 목표를 가질 수 있겠지? 나도 언젠간, 인정받을 수 있겠지? 나도 언젠간, 나를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나도 언젠간, '나'로서 안정적일 수 있겠지?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what if' 세포들이 마음을 가득 채울 때마다, 마치 행복 면역력 같은 마음의 병 바이러스가 재빠르게 공격해 온다. 덕분에 희망은 금세 사라지고, 나는 다시 다음 숨이 두렵다.
나의 다음 숨이 없을 때, 나는 과연 어떨까?
나도 그때는...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