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양육 철학이다

놀이가 아동기에 필수인 이유에 대하여

by 김은수

누군가 나에게 ‘놀이에 대한 글을 써 달라’라고 요청하면, 나는 먼저 되묻게 된다. ‘놀이법’을 알려 달라는 말인가요? 하고. 왜냐하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이렇게 놀아라, 저렇게 장난감을 활용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놀이 방법 안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는 각 가정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아무리 다양한 블록 놀이 예시나 장난감 활용법을 제시해도 실제로 적용 가능한 경우는 드물 수 있다. 놀이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놀이법을 안다 한들, ‘소비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놀이를 발판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즉 ‘소프트 스킬’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기적인 시각으로 대해야 하는 게 아이와의 놀이라는 생각이, 내가 ‘놀이에도 양육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한편, 단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놀이의 상황적 체화’다. 그 출발점은 부모(혹은 양육자) 자신을 아는 데 있다. 부모가 가진 불안, 욕망, 좌절 같은 감정을 먼저 인식하고, 동시에 아이를 부모와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며 놀이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 각각을 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놀이를 대하는 내 자세를 관찰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된다.


놀이는 단순히 아이 발달을 위한 ‘시간 채우기’가 아니다. 놀이는 부모와 아이, 형제와의 관계를 넘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육아 철학이 될 수 있다.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바로 놀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없이 단순히 ‘놀이법’만 찾는다면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 부모가 주도하는 놀이에 아이들은 곧 흥미를 잃고, 또래와의 놀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만약 그 또래 관계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도, 이미 아이의 관계 맺기는 부모보다 또래 쪽이 앞서 있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놀이는 중요하다. 놀이는 아이의 자율성을 키우는 동시에, 부모가 함께해 줄 때 부모와의 애착 관계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놀이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져야 한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협력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이 놀이가 될 수 있다. 집안일을 같이하는 것도 놀이이고, 식사 시간의 대화도 놀이이며,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역시 놀이가 된다. 부모와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한다면 그 모든 순간이 곧 놀이인 것이다. 때로는 이런 작은 모먼트에서 아이를 도울 실마리를 얻고, 아이의 우울을 감지할 수도 있다. 영유아기 부모와의 놀이 시간에서 이어지는 관계 맺음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되는 청소년 범죄, 미국의 총기 사건에 대해 들을 때마다 아이들의 유년기가 조금만 더 놀이와 대화로 채워진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은 길고, 누구나 여러 번 난관을 마주한다. 그러나 유년기가 놀이로 가득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를 넘어설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놀이는 양육자의 탄탄한 철학으로 이어져야 하며, 놀이를 통해 아이의 세계를 유연하게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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