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철 Dec 07. 2024

사냥하는 빠무(4)

주영범은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투덜대었다. 자갈치 시장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아닌가 말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경찰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유능한 모양이다. 그가 감히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택시를 대절하여 대구까지 갔지만 도착해서 밥 한 술 뜨자마자 경찰들이 수십 명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기는 서울 한 복판에서 그 난리가 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대구 뒷골목을 걷다가 이삿짐센터 광고 전단지를 보았다. 그는 즉시 이 이삿짐센터로 전화를 걸어 간단한 이삿짐이 있다고 차를 불렀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지만 이삿짐센터는 자신들은 장거리만 가는 센터라며 가까운 곳이면 다른 이삿짐센터에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주영범은 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목적지가 수원이라고 하자 상대는 수원 어디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주영범의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수원역이었다. 그가 수원역 근처라고 하자 이삿짐센터는 차를 보내겠다고 하였다.


주영범과의 통화를 한 것은 바로 국정원 직원이었다. 그는 통화를 끊고 김팀장을 쳐다보았다. 김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수원에서 다시 서울까지 유도하기는 어려울 거야. 그 괴물 여자를 수원까지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자 나선 것은 질병본부의 여직원이었다.

"저... 그냥 추측인데요."

"말해봐요."

"그 괴물 여자는 가끔씩 허공을 바라보는데 저는 아무래도 냄새를 맡는 것 같습니다."

"... 그러니까 개처럼?"

"네. 하늘을 바라보고 난 다음에는 발걸음이 빨라지거든요."

김팀장은 지시를 하여 괴물 여자의 CCTV 기록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과연 걷다가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는 듯한 동작을 하였고 그리도 난 다음에는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이었다.

"오. 과연! 잘하셨어요."

김팀장이 좌중을 돌아보자 국정원 직원 중의 한 명이 재빨리 말했다.

"주영범의 소재지에서 그의 냄새가 남아있을 옷가지 같은 것을 신속히 보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김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영범을 보다 괴물 여자에게 가까운 거리로 접근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대사님. 한국 외교부에서 오늘 저녁 수원성 전통 무용 행사에 대사님과 수행원 몇 사람을 초대하겠다고 합니다." 

씨에 대사는 흠칫 긴장했다. 그러지 않아도 빠무가 대사관에 들어와 있어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씨에 대사는 '오늘 저녁' 행사에 와달라는 급박한 요청이 한가한 '전통 무용 행사'일리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씨에 대사는 소식을 전한 직원에게 이미 선약이 있어 어렵다고 회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직원은 잠시 후 다시 돌아와 한국 외교부에서 저녁 행사에 참석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라고 다시 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한국 정부는 빠무가 중국 정부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틀림없었고 대사관에 들어와 있는 것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씨에 대사는 직원에게 말했다.

"할 수 없지. 참석하겠다고 전하게"

직원이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씨에 대사는 다시 직원을 불렀다.

"어제 돌아온 예의 그 여자와 함께 가겠네."
"네? 왜요" 

씨에 대사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알 필요 없어! 그냥 준비시켜!"

직원이 화들짝 놀라 나간 후 씨에 대사는 숨을 골랐다. 정말 재수가 없었다. 빠무를 한국 대사관에 보낸 것은  자신이 속한 단 씨 파벌이었으니 다른 선택은 없었다. 더구나 석장군이 대동해서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여자를 본 순간, 이건 자칫하다가는 큰일 날 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자의 눈은 약간 사팔뜨기로 한 곳을 바라보질 못했다. 계속 여기저기를 쳐다보았고 여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볼 때 어찌나 그 눈빛이 강했는지 자신의 머리통을 뚫고 뒤통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기는 원래부터 이 단 씨 일맥은 이상한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절대 동주석이 알지 못하도록 보안을 지키라는 말을 듣자 씨에 대사의 낯빛은 똥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단 씨의 일원이지만 동주석 그룹은 솟아오르는 태양이었던 것이다. 공무원은 권력의 향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씨에 대사는 이번 일이 원만히 조용히 지나가기 만을 바랐는데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기분이 안정되지 않았던 터인데 공교롭게 한국 정부의 이런 메시지가 온 것은 틀림없이 빠무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빠무가 대사관 안에 있다는 것은 한국 정부는 물론 동주석 파벌이 알아서도 안될 일이었다.

  

대사관을 빠져나온 씨에 대사의 차량이 수원을 향해 달렸다. 뒷좌석에는 씨에 대사와 빠무가 그리고 앞 좌석에는 기사와 수행 비서가 타고 있었다. 뒤에서는 문화 영사와 직원들이 별도의 차량으로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차량이 수원성으로 진입하자 빠무가 반응을 보였다. 코를 킁킁 거리며 창문 밖을 내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잘 되었다 싶은 씨에 대사는 신호등에서 코너를 돌고 나서 뒤에 따라오는 영사가 보기 전에 얼른 빠무를 내려 주었다.  빠무는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달려갔고 씨에 대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이 일이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으리라 바라면서...




빠무는 차에 내려 달려갔다. 빠무는 얼굴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그 변화 폭이 크지 않다. 그리고 대단한 미인이 될 수도 없고 엄청 못생긴 얼굴이 될 수도 없다. 그저 평범한 얼굴의 범위 안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빠무가 두개골 뼈 사이의 틈을 늘이고 줄일 수 있어서이다. 미간을 넓히고 줄이는 것만으로도, 인중의 길이를 늘이고 줄이는 것만으로도 안면인식 기술을 벗어날 수 있다. 빠무는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주영범의 냄새를 맡고 하마터면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그만큼 빠무는 이번 일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렇다. 주영범의 냄새, 거기에 섞여 있는 붉은 뱀의 냄새, 그리고 너무나 미약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새로운 이질적인 냄새가 빠무에게 너무나 자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빠무는 수원 성의 뒷길로 뛰어들어 가자 골목길의 사람들이 자신을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것을 알아챘다. 하기는 요즘 세상에 누가 뛰어다니겠는가? 빠무는 잠시 모든 사람들이 걷거나 뛰어다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자신의 용모에 이끌려 불나방처럼 쫓아오는 남자들이 많았다. 지금은 인간의 여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침대 위에서나 가능한 복장으로 가슴이며 엉덩이를 드러내고 다니고 있다. 그러니 남자들이 내 얼굴만 보고 쫓아오겠어? 빠무는 잠시 좋았던 시절을 떠 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쫓았다. 지금은 주영범을 찾아내야 하는 때이니까.


달리는 빠무를 국정원은 CC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빠무가 주영범이 숨어 있는 건물 근처로 접근하면서 국정원 팀은 긴장감으로 공기가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빠무는 갑자기 멈추어 섰다. 주영범이 매우 가깝게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빠무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여 보았다. 조금씩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자 점점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빠무는 사람들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사이로 여러 가지 냄새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순간 수많은 냄새의 흐름 속에서 주영범의 냄새를 찾아내었다. 


빠무는 냄새를 따라 다시 뛰기 시작했다.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정상적이었고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냄새나 소리도 없었다. 주영범의 냄새는 건물의 3층에서 흘러나왔다. 빠무가 소리 없이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올라가자 CCTV로 지켜보던 국정원에서 김팀장이 마이크를 손에 잡았다.

"김팀장이다. 목표물이 접근 중이다. 각 팀 보고하라."

"A팀, 대기 중"

"B팀, 대기 중"

"C팀, 목표물 시야 확보"

"D팀, 목표물 시야 확보"

"E팀, 대기 중"

주영범은 건물의 3층 PC 방에 있었다. 국정원은 PC 방 밖에 두 팀, PC 방 안에 한 팀, 그리고 저격수를 두 팀 배치했다.  강남 지하철 역에서 보여준 빠무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전 팀 모두 완전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빠무는 PC방 앞에서 잠시 서서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PC 방 안에는 칸막이로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예닐곱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빠무는 조용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석에는 주영범이 등을 돌리고 앉아 무엇인가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빠무는 조용히 미끄러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는데 마치 스케이트 같은 것을 신고 빙판길 위를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빠무는 주영범의 등 뒤에 섰다. 주영범은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을 멈추었는데,  조용한 것이 아무래도 빠무가 온 것을 알아 차린 모양이었다. 빠무가 주영범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빠무의 이마에서 피가 솟구쳤다. 빠무는 이마에 받힌 총탄을 오른손으로 끄집어내었다. 빠무의 머리뼈 사이가 벌어지면서 숨어있던 눈들이 여러 개 이마 위에 나타났다. 머리칼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두텁게 방어막처럼 변했다. PC 방 안에 있던 국정원 E팀은 세 사람이었는데 모두 라이플을 꺼내어 빠무를 향해 연사를 했다. 빠무는 충격을 받으며 비틀거렸지만 죽지는 않았다.


빠무의 얼굴에는 이제 눈이 스무 개도 넘게 나타났다. 동시에 팔의 길이가 늘어나며 E팀을 향해 돌진했다. E팀의 팀장은 라이플의 탄환이 떨어지자 권총을 꺼내어 빠무의 미간 사이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탄환은 물에 젖은 스펀지 속을 들어가는 것처럼 퍽 소리와 함께 사라질 뿐이었다. 빠무는 톱날처럼 변한 손톱과 괴물처럼 크게 변한 손가락을 휘둘러 팀장의 목덜미를 그었다. 팀장의 목에서 핏줄기가 치솟는 순간 빠무의 머리에 다시 탄환이 와서 꽂혔다. 저격팀의 지원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빠무는 몸을 돌려 주영범 쪽으로 달렸는데 주영범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바라볼 뿐이었다. 빠무가 주영범 근처에 간 순간 A팀과 B팀이 거의 동시에 나타나 일제히 사격을 하였다. 빠무는 몸을 날려 A팀의 세 사람을 손톱으로 그어대며 피투성이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등에다 탄환을 쏘아 붓고 있는 B팀에게 달려가더니 손으로 B팀의 맨 앞사람의 배를 관통해 버렸다. 그리고는 관통한 손으로 다시 뒷사람의 목을 긁어 버렸다. 마지막 남은 사람의 이어폰으로 김팀장의 다급한 소리가 이어졌다. "후퇴! 후퇴!"라고 말이다.


PC방은 이제 아수라장이 되었다. 핏자국과 피 냄새, 화약 냄새가 범벅이 되었고 천천히 주영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빠무의 머리에는 쉬지 않고 저격팀의 탄환이 날아와 박혔다. 그러나 빠무는 이미 흥분한 상태였고 흥분하여 각성한 상태의 빠무에게 그런 탄환은 아무런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빠무가 주영범의 앞에 다시 섰을 때 빠무의 모습은 지옥의 악마, 바로 그것이었다.


빠무는 또다시 예의 꺄우뚱하며 고개를 기울였는데 그것은 빠무가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취하는 제스처였다. 빠무가 이 제스투어를 취한 것은 주영범이 아무리 보아도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었다. 주영범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이 모든 난리를 보고 있다가 이윽고 일어나서 빠무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두 손을 바지 주머이에서 꺼내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빠무는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빠무는 실로 주영범의 이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자 주영범은 빠무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실소를 짓더니 손가락을 들어 빠무의 왼 편을 가리켰다. 빠무가 고개를 돌려 왼편을 보자 거기에는 언제부터인지 검은 인영이 하나 서 있었다. 그 그림자는 너무나 조용하고 PC방의 배경에 동화되어 있어서 마치 벽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분명히 사람이었다. 빠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초점을 맞추자 그 그림자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청청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