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도, 반려묘도 아닌 반려공
활동량이 적은 조카를 위해 언니가 작은 짐볼을 사줬다.
저걸로 얼마나 운동을 할까 싶었는데,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아이는 자는 시간 외엔 짐볼과 한 몸이 되었다. 침대가 2층 침대가 아니었으면 잘 때도 껴안고 잤을 거다. 손으로 통통 튀기고, 발로 차고, 온라인 수업을 할 때도 다리 아래 두고 굴렸다. 책을 볼 때도 함께다. 이름도 붙여줬다. 찰진 공의 느낌이 슬라임이랑 비슷했는지 '핑크 슬라임'이다. 안 보일 때는 "엄마 핑크 슬라임 어디 갔어?"라고 묻는다. 집에 식구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다. 이건 놀잇감과 운동기구를 포괄하는 '반려공'이다.
핑크 슬라임은 반려동물에게 기대하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 놀아주고, 운동도 되고, 심리적 위안도 준다. 혼나고 울적할 때 아이는 핑크 슬라임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위에 엎어져 있더라 - - ('데리고'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가지고'가 아니라 '데리고'~)
당연히 이젠 말도 한다. 아, 핑크 슬라임이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말한다. 핑크 슬라임에게.
자꾸 문 쪽으로 가는 핑크 슬라임에게, 가지 마~~ 어딜 가~ 하고
씻겨 주면서도 말을 걸고, 밥 먹으면서도 말을 건다.
물론 다른 반려동물처럼 핑크 슬라임도 말은 하지 못한다.
데리고 놀다가 물건을 떨어뜨려도 핑크 슬라임 탓이다.
덕분에 심심할 틈이 좀 줄었다. 공 하나로 이런 즐거움도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롯데 아쿠아리움에서 본 벨루가가 떠올랐다. 수중에 흰 공 하나가 매달려 있는 수족관에서 계속 돌고, 돌고, 또 돌기만 하던 벨루가. 벨루가를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 돈을 내고 입장했다는 게 너무나 미안했고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벨루가는 공을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어쩌면 핑크슬라임에 대한 애정은 코로나 19로 인한 고립에서 어느 정도는 영향받지 않았나 싶다. 대면 접촉이 줄면서 '오피셜한 언어'랄까, '사회적 언어'랄까.. 대외적 소통이 서툴러진 나처럼 아들도 어딘가에서 결핍이 생겼을 것이다. 핑크 슬라임은 그걸 채워준 것 같다. 벨루가만큼 갇혀 있는 게 아니기에 반려공으로 가능한 것이겠지만.
새 가족이 생겼으니 핑크 슬라임에 더 알고 싶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얘는 성격이 어때?" "표정은 보통 어때?" 하니 써준 글이다.
어쩌다 보니 반려공이 심심하지 않게 친구도 생겼다.
매트맨이다.
이렇게 코로나 19의 시간이 간다.
핑크 슬라임은 지금도 아이 발 밑에서 귀여움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