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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키 Nov 28. 2020

강아지똥도 별을 보았을 거야.

경기도 주부의 삼천포 일기

며칠 전, 독서논술 수업 듣다가 답답해서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강아지똥]의 수업자료와 수업한 내용을 보는데, 아이들이 독후 활동으로 쓴 동시 몇 편이 거의 모두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쓸모 있어질 거야'라는 내용이었다. 그게 뭐 문제인가, 책의 주제를 잘 파악한 거 아닌가 하지만 쓸모에'만' 삶의 가치를 두는 건 자칫 위험해질 수 있지 않나. 사람은 쓸모와 함께 자기 자신, 삶 자체의 가치와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수업 후 찾아보니 안 그래도 [강아지똥]의 독후활동 후 어느 부모가 아이에게 "강아지똥도 쓸모가 있는데 공부 못하는 넌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충격받은 동화작가가 이런 오독에 [송아지 똥]을 펴냈다고 한다. 나는 오독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책의 주제를 잘못 갖다 쓴 것이지만, 그런 독서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실제로 아이들은 그렇게 읽고, 충실히 독후활동을 했다. 문제는 책 속에 묘사된 강아지똥은 쓸모에서만 기쁨을 느꼈으며, 쓸모 후 스러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내가 해당 책의 편집자였다면, 출간 전 작가에게 이런 제안을 했을 것 같다.

"강아지똥이 별과 달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을 넣는 게 어떨까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땅의 온기에 몸이 따뜻해지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면 어떨까요. 그래서 그 봄에 동참하고 싶어지는, 꽃 피는 걸 도와주고 싶어지는 설레는 마음을 넣어주면 어떨까요."

모든 생명은 귀하고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작가에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병마와 가난으로 권정생 작가의 삶은 빈한했다. 그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라 더욱 아름다운 빛을 낸다. 하지만 그 빛이 나오기까지가 참 어둡다. 어렵고 어렵다가 스러질 때 슬프게 빛난다. 우리나라 동화에는 그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작품이 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상을 받는 것 같고. 그렇게 다시 많이 읽히고... 하지만 그런 것만 추앙받고, 읽히다 보면 여린 아이들은 세상을 춥고, 쓸쓸하고, 혹독하게 인상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외국에서 들어온 그림동화 외에 우리나라 동화책은 거의 전후의 암울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를 잃고, 가난에 떨고, 시래기를 찾아다니거나 귀리죽을 먹고, 주워다 키운 아줌마한테 구박을 받았다. 거기엔 <소공녀 세라> 같은 반전은 없었다. 난 귀리죽의 맛이 궁금했다. 밥을 물에 말아먹을 때마다 이게 비슷한 맛일까? 생각했고 이것보다 맛이 없을 거라고 상상하며 마음이 아팠다. 호환마마처럼 가난이 무서웠다. 내가 가난한지, 부자인지도 모르면서. 그 아이들이 살 법한 어두운 회색 슬레이트 골목 같은 것도 겁났다. 아이들이 즐겁게 나와 뛰어노는 장면 같은 건 없었거든. 거기서 길을 헤매고, 구정물을 버리고, 먹을 걸 찾았으니.  


 그렇다고 이런 작품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꼭 읽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작품이고, 고귀한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읽을 땐 난 아이들이 밝고 명랑한 작품을 3배 읽고 나서 읽었으면 좋겠다.


호수 주변을 걷다가 하늘의 달과, 호수에 잔잔히 번지는 달빛과, 갈대 사이로 스미는 달빛을 보며 생각한다. 강아지똥도 분명 이런 달빛을 봤을 거다. 곱다고 느꼈을 거야. 민들레에게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라고 물었으니.  마음이 강아지똥에게  하나의 삶의 경이이자, 의미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작품은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 100% 해냈다.  감동과  슬픔에 이런 아쉬움, 욕심이 들뿐이다.



.. 쓸모없는 아름다움이라도 보고 느끼고 마음에 담는 것의 기쁨과 가치를 [강아지똥]만큼의 감동으로 전하고 싶다. 아니... 개미똥만큼이라도...


* 더 찾아보니, 1969년에 권정생 단편동화집 [강아지똥]이 나왔고, 30년 뒤인 1996년 그림책이 나왔다. 그림책에서는 원작의 몇 군데를 없앤 듯하다. 출처_https://blog.naver.com/bh4703/100021584430 원작이 매우 궁금하다. 

** 또 더 찾아보니 원작의 강아지똥에서는 강아지똥이 '별'에 대한 소망을 품는 대목들이 있는 것 같다!  출처_http://www.childbook.org/spc/kjs/kjs5-14-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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