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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Mar 02. 2021

티베트 순례 여행

-나의 청춘 여행기 23 -티베트

라싸에서 처음 맞는 아침이다. 숙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코를 찌른다. 빨리 걸으면 고산증이 온다고 해서 되도록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포탈라 궁 앞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차고 넘쳐났다. 오체투지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온 몸을 땅에 대고 다리까지 쭉 편 뒤 이마를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이다. 부처님께 온전히 나를 맡긴다는 의미의 기도법으로 티베트에서는 어디를 가나 이렇게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제법 추운 날씨인데도 장갑도 끼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무척 경건해 보인다. 기도하는 사람들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어서 차도를 건너편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포탈라 궁 앞에 있는 광장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걸어가 조캉 사원이 나타다. 조캉 사원은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손챈감포 왕이 7세기 중엽에 지은 사찰로, 손챈감포 왕의 아내인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모셔 놓기 위해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티베트인들은 마니차를 손에 들고 시계방향으로 조캉사원을 돌고 있다. 마니차는 원통 모양으로 생겼는데 측면에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었다. 손에 쥐고 빙빙 돌릴 수 있는 사이즈부터 사람 크기의 사이즈까지 그 크기는 다양한데 마니차의 저 둥그런 원통 모양 안에는 경전이 들어 있어서,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조캉 사원 앞 작은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봤는데, 건물 안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야크 램프가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자가 들어가도 되는지 불확실했지만 호기심에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봤다. 동물성 기름 램프에서 피어오르는 누릿한 비린내가 코를 찔러 오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티베트인들은 오체투지로 조캉사원을 참배하는 것을 일생에 꼭 한 번은 해야 할 의무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조캉 사원 앞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 눈치를 보다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이 일어나는 타이밍을 틈타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캉사원의 내부 광장을 지나자 정면에 대법당이 나타났다. 1층 대법당은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는 곳인데, 조캉사원의 핵심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상, 왼쪽에 구루 링포체(티베트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인물)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이 대법당을 포위하듯 배치되어 있었다.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니 조캉사원의 상징인 황금지붕 탑이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조캉사원의 순례길인 바로크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다. 바로크 광장은 종교적인 색채와 상업적인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으로, 각종 상점과 식당 등이 즐비해서 현지인의 생활상을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과 사람들이 바로크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황금지붕 탑에서 바로크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쩌면 저 바로크 광장이야 말로 티베트인들의 마지막 안식처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싸 시내는 본토에서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티베트의 문화도 점차 엹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조캉 사원과 바로코 광장 주변에서는 아직도 티베트만의 숨결과 색채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세라 사원을 찾아가 봤다. 세라 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 대학으로 라싸 시내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었다. 세라 사원은 겉으로 보기보단 규모가 꽤 큰 사원이었는데 사원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바닥에 깔린 정갈한 바닥돌이 인상 깊었다. 


나는 한 무리의 티베트인들과 섞여 대경전 쪽으로 올라가 봤는데 마침 그곳에서 스님들의 교리 문답인 '최라'가 열리고 있었다. 최라는 티베트 승려들의 1:1 토론 베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승려들은 그날 배운 교리를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통해 복습하기도 하고, 문제를 내기도 한다. 이 토론 베틀 때문에 세라 사원의 승려들은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던데 직접 보니 과연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날 내가 본 최라는 매우 뜨거웠다. 특히 한 어린 스님의 문답이 내 눈길을 끌었다. 티베트어로 문답을 하기 때문에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진지하게 문답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스님은 질문을 하고 오른손 손등으로 왼손 손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자, 내 질문을 끝났으니, 당신이 답을 해 보라."는 의미의 몸짓이다.     

질문을 받은 스님은 바닥에 앉아서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연다. 질문을 받은 스님이 뭐라고 답을 하자, 어린 스님이 다시 매섭게 다그친다. 틈을 주지 않고 손등으로 손바닥을 내리치는 것이다. 불시에 연이어 질문을 받은 스님은 매우 당황해하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많은 저 선배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 승려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도 손에 땀이 날 정도니, 당사자는 오죽할까. 

최라가 끝난 뒤 사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그늘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아줌마들을 만났다. 외국인이 혼자 서성거리고 다니는 게 신기했는지 먼저 말을 붙여 왔다. 물론 티베트어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뜻이야 뭐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도 이리 와서 같이 밥을 먹자는 얘기다. 


딱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도 아주머니들이 권유하는 바람에 잠시 자리를 같이 했다. 딱 한 개만 먹고 일어서겠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아줌마들은 아랑곳 않고 이것저것 음식을 권했다. 사실 그 음식은 맛도 별로였고, 입맛에 맞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게 건네 준 그 음식들은 따뜻했다. 그때 그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부디 모두 무병장수 하시길... 


오후 3시경에 세라 사원을 나와 버스를 타고 라싸 시내로 돌아왔다. 첫날부터 너무 많이 걸어서일까.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지더니 몸살 기운이 엄습했다. 고산증 증세가 아닐까, 덜컹 겁이 나서 얼른 야크 호텔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다행히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자 어지러운 증상이 가라앉았다. 


오늘 하루는 좀 특별한 날이었다. 순례자가 되어 순례길을 걸어 본 건 아니지만, 순례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삶을 살아가는 의미랄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랄까, 오늘 하루는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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