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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Feb 06. 2021

죽음 언저리에서 본 삶

-나의 청춘 여행기 22 : 인도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라씨 가게가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블루 라씨라는 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가게로 잘 알려져 있다. 불루라씨 숍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 걸 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찾긴 하다 보다. 블루 라씨 숍 벽면은 손님들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내 눈에는 왠지 약간 으스스해 보였다.


바라나시의 모든 가게가 그렇지만 블루 라씨 숍도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아 보이는 가게였다. 시커멓게 변해 버린 도마 하며, 그릇을 닦는 누런 수건 하며, 라씨를 담아주는 토기 하며, 모두 청결과는 담을 쌓고 지낸 지 오래인 듯싶었다. 라씨 위에 올려놓은 토핑도 솔직히 좀 지저분해 보였다. 일전에 바라나시에서 상한 우유로 만든 라씨를 먹었다가 크게 배탈이 난 경험이 있어서인지 왠지 좀 꺼려졌다. 맛은 나름 괜찮았지만 반쯤 먹다 말고 스푼을 내려놓았다.

일행이 라씨를 다 먹기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골목 안으로 우르르 걸어 들어오며 “람 람 사데~~ 람 람 사데~~”라고 외치고 지나간다. 장례행렬이다. 사다리처럼 만든 대나무 위에 천으로 둘둘 만 시신이 올려져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시신을 든 채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경보를 하듯 빨리 걸어간다. 모든 절차가 엄숙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장례 문화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블루 라씨 앞 골목은 화장터로 곧바로 이어져 있어서 그런지 잠깐 사이에 장례 행렬이 세 번이나 지나갔다.


블루 라씨 가게를 나온 우리는 장례 행렬을 따라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화정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로 나가 봤다. 망자를 지고 온 사람들은 시신을 강가(ganga) 물에 세 번 담갔다가 우물 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갠지스’는 영어식 이름이고, 인도인들은 ‘강가’리고 부른다.  


바라나시에는 85개의 가트가 있다. 강가에 쭉 늘어서 있는 계단을 가리켜 가트(Ghat)라고 하는데, 바라나시에서는 이 가트를 빼곤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현지인들은 빨래하는 가트, 기도하는 가트, 목욕하는 가트, 화장하는 가트 등으로 구획을 나눠 놓고 나름 계획성 있게 가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화장터 가트가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트. 일명 버닝가트라고도 불리는데, 가장 규모가 큰 화장터여서 그런지 마니까르니까가트 가트 주변은 장작과 시신이 타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화장터 부지는 십여 구의 시신을 동시에 화장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내가 찾았을 때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든 화장터 자리가 차 있었다. 이제 막 화장을 시작한 상주는 불씨를 붙여 들고 시신을 몇 바퀴 돌고 있었다. 지금 상주가 들고 있는 저 불은 바라나시의 한 사원에서 모시고 있는 ‘꺼지지 않는 불’에서 얻은 불씨. 상주는 불의 신(아그니)에게 망자를 받아달라는 노래를 부른 뒤, 망자를 안치해 놓은 장작에 불을 붙였다.     


시신이 완전히 재로 변하려면 서너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유족들도 나름 할 일이 많다. 우선 상주는 잣대기를 들고 시신이 잘 탈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 돌보고 있다는 말은 좀 완곡한 표현이고, 긴 잣대기로 아궁이에 넣어둔 고구마를 찔러보듯 시신을 사정없이 쿡쿡 쑤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두개골을 터트리는 것이다. 뜨거운 열로 인해 대부분의 두개골은 저절로 터지는데, 만약 두개골이 터지지 않으면 상주가 직접 두개골을 깨야 한다. 두개골이 터져야 망자의 영혼이 해방되고, 불의 신 아그니가 그 영혼을 죽음의 신에게 데려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개골이 잘 안 터지는 걸까? 한 상주가 긴 잣대기를 이용해서 두개골을 있는 힘껏 내려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현듯 예전에 빠하르간지에서 만난 여행자 선배가 들려준 얘기가 떠오른다. “하루는 버닝가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개가 타다만 시신 토막을 덥석 물고 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도 상주는 그냥 못 본 체하고 있더라고요.” 시신을 화장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때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싶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소 한 마리가 화장터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뭔가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 모습이 보인다. 초식동물인 소는 풀을 뜯어먹고 산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의 소들은 꼭 풀만 뜯어먹고사는 건 아니었다.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플라스틱이나 종이 상자 같은 것을 뜯어먹기도 한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나저나 화장터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저 소는 지금 뭘 우걱우걱 씹고 있는 걸까? 설마.... 아니지?

화장터 근처 가트에서는 머리를 삭발한 유족들이 일렬로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누가 죽건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 인도라고 다르지 않다. 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유족 중 한 사람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들은 나뭇잎 같은 걸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짜파티와 경단처럼 생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너무 비위생적으로 보여서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짜파티를 반쯤 찢어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있는 힘껏 미소를 쥐어짜며 그 자파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화장이 다 끝났는지 식사를 하던 유족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화장터로 내려간 유족들은 긴 대나무로 타고 남은 재를 끌어 모아서 강에 뿌렸다. 내가 볼 때 그 과정은 그리 경건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충 재를 끌어 모아서 강에 휙 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저것도 이들의 장례 문화일 테니, 나 같은 여행자가 이러쿵저러쿵 할 입장은 아니다.


한 사람이 재가 되기까지는 채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재를 뿌리는 모습을 보니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한다. 이 세상에서 100% 확실한 건 죽음뿐인데도 애써 죽음을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는 싫든 좋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게 온통 죽음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갑자기 인생이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죽음으로 인해 내 기억들까지 모두 재가 되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아내와 딸 그리고 우리 집 강아지 찡꼬와 함께 쌓아 온 추억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죽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 안에 깃들어 있는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워버릴 것이다. 가트에 앉아 재가 되어 가고 있는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든 것을 끝낼 그 죽음이 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화장터 풍경을 함께 지켜본 여행자가 말했다. '삶은 허망한 것'이라고. 그렇다!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마주 보고 있으면 삶이 한없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것을 끝내는 죽음이 있어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한 것'이 아닐까. 


오늘 하루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든, 

축복임에 틀림없으니, 

감사하며, 

아끼며,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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