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수줍어서 부끄러움을 탄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shy고 취향에 따라 abash, bashful 정도를 쓸 수 지만, 뭔가 잘못해서 수치심을 느껴 부끄러운 것은 shame이라는 차이가 있다.
죄를 지은 정도는 아니고, 길에 넘어지거나가벼운 실수 같은 것으로, 그저 볼 따땃하게 부끄러운 일의 정도는 embarrassment다.
아 창피해! 창피하잖아! it's embarrassing.
전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인간의 심리는 복잡한 것이니까, 자신이 남들만 못한 것 같을 때, 혼자 좀 튀는 행동을 했거나, 가령 드레스 코드 상 차림새가 걸맞지 않은 등으로 인해 약간의 수치심이 섞인 감정에도
embarrassment를 쓸 수 있다.
(넘어지면서 안 보여주고 싶은 걸 보였다면 좀 그렇지만 이것이 딱히 ‘부끄러운’ 이유는 모르겠다. 남의 밟을 밟고는 ‘어이쿠’가 사과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넘어진 게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나. 이런 것을 가지고 웃는 사람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케첩 짤 때 나는 소리 가지고 낄낄거리는 사람과도.
우리집 가훈 하나: 안 웃길 때 웃지 말고 안 웃길 때 웃지말자.)
망신스러운 일은 losing face다.
losing face의 반대말 'saving face 체면을 살린다, 는 말이 마치 동양인들의 점유 생각인 것 같이 여겨질지 모르지만,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다. (서양 저자의) 인간 행동에 관한 책에서, ‘많은 것은 결국 체면치례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실제로, 현재도 중동에서 거행되는 honor killing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살인)도 따지고 보면, 서양의 duel, 칼싸움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뒤돌아서 열 발자국 빵! 이 된 그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duel은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간주되는 상황에서 한쪽이 결투를 신청하는 그것인데, 러시아가 사랑하는 시인 푸쉬킨도 애인을 두고 일어난 언쟁에서 자청한 이걸로 죽었다고 하니 사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얼굴’이 뭐라고.
먼저 글에서 살펴본, 뭔가 지가 잘 난 얼굴에도 이름이 있듯이(smug), 한국말로 망신스러운 것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말처럼, 잘못을 한 사람들의 얼굴은 부끄러운 일이 있었던 embarrassing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죄책감’을 가진 것을 강조해서 shamefaced 글자 그대로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니, 부끄러운 것은 본인이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 얼굴을 본인과 별개로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은 50세에 자신의 값어치를 말하는 얼굴을 가지게 된다’, 고 말한 조지 오웰은 막상 자기는 치사하게 46세에 죽어 그 얼굴은 무덤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렸지만.
무슨 부끄러움이 괜찮겠느냐 마는, 정말 피하고 싶은 부끄러움은, feeling humiliated다.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어졌다, 즉 외부적인 요인으로 망신을 ‘당했다’, 는 말이다.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humiliated는 embarrassing 보다는 약간 더 바닥으로 내려간 느낌이라서 혼자서 조금 반성하는 정도를 가지고는 쓰지 않는다. 순수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단어이다.
스스로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feeling guilty, feeling a pang (of remorse) 죄책감을 가진다, 고 하겠다. 이런 감정은 참회, contrition, regret, remorse에서 자칫 자기혐오 self-disgust,
자학 self-reproach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잘못한 일을 자신이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wallowing (진탕 안에서 퍼덕퍼덕하고 있는 모습이다)도 문제지만, 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shameless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실, 뭔가 잘못했을 때 수치스러운 것은 본인이 알아서(?) 느껴야 하는 것인데, shameless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들이 judge 단죄하게 되는 것이므로 사실은 더 수치스럽게 되는 것을 자청하는 짓이다.
그대가 살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만나본 행운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예 정도가 아니라 그 정의를 대다수 한국 국회의원들에서 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아 왜 언제나 부끄러움은 나의 몫
그런 사람들에게 가지는 감정은 경멸 derision, contempt이다. 칵퉷의 감정
그런데, 또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남을 고의로 부끄럽게 하는 것, 즉 잘못을 했든 안 했든 고의로 망신을 주는 것 shaming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동의어로는 dishonor (honor 명예를 dis 없앤다) defame(de+fame), humiliate, ridicule (놀리다), degrade(낮추다) 등이 있고, slander (상해를 주다), 이름이나 얼굴에 먹칠을 한다는 의미로
smear, stain, blot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성흔이라는 말에 쓰는 stigma도 주홍글씨처럼 쉽게 지울 수 없는 징표를 남긴다는 말로도 쓴다.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도 한심하지만,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있고, 어쩌다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남에게 고의로 망신을 주는 마음도 별로 예쁘게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
번번이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 득도를 해서 망신 살 짓을 한 사람을 보고도 비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런 행동을 해서 절대적인 피해를 주었거나, 법적 도덕적으로 망신을 당해 마땅한 사람은 조림돌림을 하거나 놀리거나 웃음거리로 삼고 ridicule 있을 일이 아니라 조용히 고소/고발 sue를 해서 적절한 punishment 벌을 받게 하도록 하고 다음 선거에서는 좀 뽑지 말자 그런 못난 사람들 진짜 몇 번을 당해야 정신차려자. 그냥 마음에 안들거나, 나와 다르거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리돌림하는 건 수치스러운 shameful행동이다.
참고로, 명예훼손은 libel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로 동양의 단체주의에서는 망신, 수치 shame 같은 것들이 뭔가를 안 하게 하는 주요한 동기가 되고, 개인주의인 서양에서는 죄책감 feeling guilty 그 동기라고도 한다.
문화 영향이 물론 있어도 사실은 사람마다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즉,
단체주의에서는 남의눈을 의식해서, 이를테면 뭘 잘못했을 때 ‘아 ‘쪽’(얼굴이란 뜻이라지요) 팔려!’가 기본 반응이라서 그 대응책은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것이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스스로 내면의 잣대로 ‘내가 이거밖에 안되다니’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돌이킬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거다.
더 바람직하긴 하지만, ‘죄’ 라거나 ‘양심’ 같은 것은 ‘본능적인 선함’이라기보다는 종교나 사회적인 규범의 외부적인 주입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나 내면화하느냐일 뿐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속한 사회와 종교의 패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특정 사회에서 개를 먹는 것이 죄악이냐 아니냐 같은 것들)
나중에 ‘인종차별’에 대해 따로 다룰 예정인데, 오히려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적인 본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동물적 본능도 있고 반드시 양분도 아니거니와, 어느 문화가 더 낫다기보다는 언제든지 그저 절충, 절충이 중요할 것이다.
지금쯤은 다들 아시는 것 같지만, 벽장의 해골, skeleton in the closet/cupboard는 사람이나 집안에 숨겨놓은 부끄러운 비밀 같은 것을 말한다. 해골같은 것이 여느 집에 벽장에 쉽게 들어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의 먼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lgbtq들이 coming out 커밍아웃한다는 것도, 옷장에서 나온다, 즉 이들의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넘쳐나는 사회가, 정작 별 쓸데없는 것에서 기준을 세워 옳으니 그르니 한다. lgbtq 분들도 그렇지만, 순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 몸 자기가 맘대로 하는 게 안 되는 사회에서 (생명이 중요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소중한 정자도 함부로 내버려도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개인 취향일 뿐인 것 가지고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세상이 안타깝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손도 안 씻는 사람보다는 고양이가 좋은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듯이. (저는, 아이 잘 자라 독립시킨 행복한 결혼 26년 차 입니다만 사람은 그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각자 자기 한 몸 책임지면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누구나 먼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리고 먼지 없이 깨끗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부끄러움으로 말하자면, 정말 더러운 먼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에는 아이에게 뭔가 조언을 하기보다는, ‘아무리 노력해도 살다보면 결국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저 그걸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하면서 열심히 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속으로 썪지말고 언제든지 말을 해라’고 밖에 말을 안 하게 된다. 그렇게, 사실 살면서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실 '용서'와 '반성'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